내가 운영하는 책방 바로 옆집 할머니를 취재했을 때는 취재라기보다는 한바탕 수다를 떨었다. 라이프스타일 코너에는 아주 간단한 글만 실리지만, 우리는 2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의 옛날 옛적 이야기, 집안에서 일어난 일, 동네 사람들 이야기 등. 할머니는 자신이 키운 채소를 나눠주는 일이 뭔 큰일이냐고 내가 취재하고자 하는 내용은 별로 말씀하지 않아서 당황했던 기억난다. 할머니의 무던함, 별일 아님, 내색하지 않음과 반대로 나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에게 주는 건 얼마나 많았는지. 계절마다 다양한 작물을 부지런히 가꾸던 할머니의 손도 생각난다. 할머니의 작은 화단 앞에서 동네 사람들과 대화 나누던 모습도. 골목길에서 바라본 풍경 중에 가장 따뜻하고, 좋아하던 풍경이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던 곳엔, 눈길도 닿는 것일까. 할머니가 이사 간 후에도 할머니의 화단을 물끄러미 바라본 동네 사람들이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온갖 잡초로 뒤덮여 있다. 무언가를 자꾸 손에 쥐여 주시던, 동네 사람들과 살가운 대화를 나누시던 할머니가 보고 싶다.
육림랜드를 취재하기 위해서 4–5번 정도 방문했다. 취재 전, 날씨 좋은 어느 날 육림랜드에 놀러 갔다. 산책하고, 사진 찍고, 구경하고, 놀이기구를 타며 같이 간 애인과 많이 웃었다. 오락실 게임을 하면서, 육림랜드 곳곳에 있는 옛날 타일과 조금은 촌스러운 문장들을 보면서. 애틋함과 안도감도 동시에 들었다. 이런 오래된 공간이 남아 있다는 애틋함과 지금도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안도감이. 취재 당시 육림랜드 원장님을 만날 땐 조금 긴장했었는데, 직접 만나 뵈니 무뚝뚝함 속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도움을 많이 주셔서 취재 후에는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섰던 기억도 난다. 육림랜드를 방문하는 손님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 다른 날에 혼자 육림랜드에 갔다. 그때 운전을 혼자서 처음 한 날이라 심장이 떨렸던 건 아직도 생생하다. 용기 내 손님들에게 인터뷰를 청하고 혼자 운전해서 돌아왔을 땐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나 자신이 뿌듯했던 날이었다.
사암리에 사는 작가님이 부러웠다. 근처 이웃집 나무보일러에서 나오는 연기 냄새도 좋았고, 복사꽃 핀 풍경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취재 때문에 왔음에도 주변 공기에 평온해진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이곳에서는 조금 천천히 일상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잘 만들지는 못해도 그럭저럭 무언가를 손수 만들고 직접 수확한 무언가를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이나 햇살을 맞으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삶. 도시 근교에 살면서 도시의 시간보다 자연의 흐름을 따르고 싶다.
어릴 때는 표정을 숨기고 싶을 때가 많았다. 얼굴에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는 아이란 이야기를 들으며 종종 혼이 났기 때문일 테다. 그게 혼날 일인지 지금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글에 담진 않았지만 취재를 하며 새롭게 알게 된 건, 인형극 배우들이 인형 뒤에 숨어 자신의 표정이나 마음을 숨길 수 있겠구나 하던 것들이었다. 분명 내가 연기하는 일이지만 내가 아닌 인형의 연기라는 아이러니라니. 나는 대학생 때 인형탈 봉사활동에서 느꼈던 편안함을 희미하게 떠올렸고, 마음이 자유롭기 위해 때때로 인형 같은 가면이 필요할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다.
POT와 2020년 봄에서 2021년 여름까지의 계절을 함께 하였다. 예술가를 만나고 그의 작업세계를 소개한다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매거진을 대하는 대중들의 눈높이로 작가를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무거움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작가의 신변잡기나 작품 외의 요소들에 대한 것보다는 작가가 화두를 삼고 있는 주제나 작품이야기에 대하여 집중하려고 했었다. 2020년 봄호의 첫 인터뷰 대상은 최덕화 작가였다. 작가를 알게 된 것은 5년 정도였고, 기획한 전시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나 그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한 시간 남짓의 시간동안 10여년의 작업 스토리를 들으며, 예술가로서의 최덕화만이 아닌 그 사람을 더욱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POT를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된 작가들에게는 자꾸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짧은 인터뷰로 그의 작업세계를 담기에는 부족함의 연속이었다. 대신 전시기획을 하는 나에게는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지속적인 관심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POT는 지금의 생생한 춘천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거의 유일한 매거진이 아닐까 한다. 더 이상 매거진의 일원은 아니나, 계절이 바뀌어 POT가 내게 오는 날이면 늘 설레임으로 맞을 것이다.
짙은 청록의 숲내음과 고소한 나무집 냄새. 그리고 몽환적인 다리 위 안개. 가을호 취재기를 떠올렸을 때 전구에 불이 켜지듯 생각나는 장면이다. 디깅의 주제인 춘천 ‘다리’에 얽힌 에피소드 취재를 위해 신동면에 있는 ‘썸원스페이지숲’을 찾았다. ‘다리’와 관련된 인터뷰였지만, 인터뷰 장소는 강과는 다소 거리가 먼 숲속 게스트하우스였다. 깔끔하게 지어진 나무집 안에는 통유리로 된 창이 크게 나 있고, 오후의 햇살이 라운지를 가득 채웠다. 드리운 햇살에 테이블 위에 펼쳐진 책 모서리가 빛났다. 주인장은 공간을 똑 닮은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토록 뽀송뽀송한 오후, 낭만적인 공간에서 우리는 출렁이는 소양강과 세월교의 새벽녘 축축한 물안개, 그리고 서운했던 지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현재를 함께하고 있는 나는 그의 추억도 함께 더듬고 있었다. 당시엔 아쉽고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들. 공간과 인터뷰 내용이 참으로 이질적이지만 결국엔 다 연결되는 이야기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나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가도 불현듯 물안개를 훅 들이키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나의 첫 인터뷰는 늦여름 숲과 나무벽이 내뿜는 신선한 향, 그리고 주인장의 따뜻한 환대, 기억 속 다리 위의 물내음. 쉴 새 없이 끄덕이던 나의 고갯짓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무도 없는 객석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온갖 전선과 무대장치들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혼자 보기 아까울 만큼 장관이었다. 모든 설비들이 걷히고 나니 높은 무대의 층고와 복잡하게 연결된 와이어들이 보였다. 나는 일상성이 파괴되는 현장에서 큰 자극을 받는다. 거리 한가운데 놓여진 커다란 포크레인이나 공사장의 풍경, 출입금지 표지판과 펜스 같은 것들 말이다.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벤트 뒤에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재단에서 근무하며 알게 된 후로는, 더더욱 그런 상황들을 유심히 지켜보게 된다. 매거진을 만들면서 나는 춘천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내부의 시선과 외부의 시선을 고루 담는 과정은 양팔저울처럼 예민하고도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일이었다. 매번 인사하고 업무 이야기를 나눴지만 무대운영팀 송동석 감독님의 꿈이 무대 미술가였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정돈된 무대설비를 ‘예쁘다’고 표현하는 것도, ‘기계 설비지만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인다’는 말도 그래서 더욱 진심으로 느껴졌다. 춘천문화예술회관은 이런 진심들이 모여 더 큰 가능성을 품은 공간이 되었다. 공연장 한켠 외부로 열린 장비반입구에서 초록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바깥은 여름. 공연장의 열기와 벅차오르는 박수 소리가 느껴질 때마다 나는 안전모를 쓰고 무대 꼭대기에서 스테이지를 내려다보던 그날의 취재 현장이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