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소개
극단 연극사회는 1984년 9월 6일 ‘극회 카오스’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20일부터 21일까지 조광화 작, 정진수 연출의 《신부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창단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다.
1987년 9월 6일, 극단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보다 분명히 하고자, ‘연극 속에서 사회를 이야기하지만, 앞으로는 사회 속에서 연극만을 하고자 한다’는
의지를 지니고 극단명을 ‘연극사회’로 변경하였다.
공연 활동을 이어가던 중, 1989년 6월에는 고금석을 중심으로 춘천에서 활동하던 ‘춘천앙상블’과 통합하여 극단명을 ‘태백무대’로 개칭하였다.
창단 당시 단원은 홍기동을 비롯한 20대의 젊은 연극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신선하고 실험적인 연극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80년대 젊은이들의 고민을 다룬 《19 그리고 20》(공동구성, 박찬빈 연출) 조세희 작, 홍기동 연출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우린 나발을 불었다》, 《불감증》 등이 있다.
이 작품들은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 이야기하길 꺼려하는 사회의 이면을 정면으로 다루며,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외에도 《오장군의 발톱》, 《칠산리》 등 사회비판적 주제를 담은 작품들을 무대에 지속적으로 올리며,
연극을 통해 사회적 성찰과 공감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노력해왔다.
1994년에는 다시 극단명을 ‘연극사회’로 환원하고,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연극사회는 시대의 아픔과 청년의 고민, 사회의 부조리를 연극이라는 예술 언어로 표현해내며,
지역 연극운동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해온 극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극단 연극사회의 탄생(창단 배경)
극단 연극사회의 주요한 멤버인 홍기동은 춘천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2년,
학교 축제인 ‘상록제’ 기간에 전통적으로 연극을 올리던 성경연구반 동아리에 가입하며
연극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그는 《율보》라는 작품에서 목사 역을 맡아 ‘상록제’무대에 처음 서게 되었고,
이를 통해 연극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 시기, 춘천 지역 연극계는 1980년 윤고성 대표가 창단한 극단 예맥이 《인형의 집》을 무대에 올리며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던 시기였다.
특히 1982년, 극단 예맥은 셰익스피어 작, 윤고성 연출의 《오셀로》를 춘천시립문화관에서 8일간 장기 공연하였으며,
대규모 코러스와 병사 등 많은 출연진으로 지역 내 큰 관심을 모았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홍기동은 친구들과 성경연구반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오셀로》에 병사 역할로 출연하며 외부 공연 무대에 참여하는 특별한 경험을 쌓게 되었다.
1984년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그는 ‘청소년문화예술연구회’를 결성하여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고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당시 고등학생들이 학업 이외의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 연구회를 통해 댄스팀, 시 낭송팀, 중창팀 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매년 연합 발표 공연을 개최하는 등,
지역 청소년 문화예술 활동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는 매우 진취적이고 선도적인 시도로 평가된다.
같은 해, 강원대학교에 입학한 홍기동은 자연스럽게 강원대학교 극예술연구회 ‘영그리’에 가입하여 본격적인 대학 연극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대학 내부 활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외부 극단을 창단하여 더 폭넓은 연극 활동을 펼칠 계획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극단 예맥 출신의 김광진(연출·배우), 원태경(문인)과 뜻을 함께하여, 1984년 극회 ‘카오스’를 창단하였다.
이는 이후 극단 연극사회의 모태가 되는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활동 및 흐름(운영 및 변화)
1984년 ‘극회 카오스’ 춘천에서 가장 젊은이들이 모였다.
1984년, 춘천에서 젊은 연극인들이 모여 ‘극회 카오스’를 창단하였다. 대표는 원태경이며, 창단 멤버로는 홍기동, 김광진 등
당시 춘천 지역에서 가장 젊은 연극인들이 주축이 되었다.
창단 공연은 1984년 12월 20일부터 21일까지 이틀간 《신부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조반니 오 꽈레스키 작, 김광진 연출)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두 번째 작품으로 《화가 이중섭》을 준비하였으나, 국립극단의 동일 작품 지역 순회공연이 춘천에서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으로 공연작을 변경하였다.
이후 1985년 6월 29일부터 30일까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조세희 작, 홍기동 연출)을
춘천시립문화관(객석 수 460석)에서 2일간 총 3회 공연하였다.
총 관객 수는 약 1,300명에 달했으며, 이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성공적인 결과였고, 이 작품은 현재까지도 극단 연극사회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세 번째 작품은 같은 해인 1985년 9월 28일부터 29일까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테네시 윌리엄스 작, 홍기동 연출)로 공연되었다.
블랑쉬 역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용명희가 맡았으며, 스텔라 역은 최연희, 코왈스키 역은 이연수가 출연하였다.
특히 용명희는 섬세하고 집중력 있는 연기로 관객과 관계자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극회 카오스는 《화해》, 《출구 없는 방》, 《다리 위, 다리 밑》 등의 작품을 연이어 공연하며 창작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
1987년 ‘극회 카오스’는 ‘연극사회’로 명칭 변경
1987년, ‘극회 카오스’는 ‘극단 연극사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창단 멤버 홍기동은 군 제대 후 복귀하며,
연극은 먼 세계의 이야기가 아닌 실생활 속 사람들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제는 연극 속에서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연극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극단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였다.
이에 따라 극단 명칭을 ‘극회 카오스’에서 ‘극단 연극사회’로 변경하고, 1987년 12월 18일부터 20일까지 조세희 작, 홍기동 연출의 《시간 여행》을 공연하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이 작품은 명칭 변경 이후 극단의 창단 의미를 상징하는 공연으로, 극단 ‘연극사회’라는 이름 아래 첫 무대에 오른 공연이었다.
1988년에는 아돌푸 가드 작, 홍기동 연출의 《부도덕 행위로 체포된 여인의 증언》,
그리고 같은 작가의 작품을 각색한 《해용과 도현의 아일랜드》(홍기동 각색·연출)를 무대에 올리며 연극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해용과 도현의 아일랜드》는 춘천 어린이회관 야외무대에서 공연되어 공간 실험과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된다.
1989년에는 춘천에서 전업 연극을 지향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고려대학교 극회 출신의 고금석,
주진모를 중심으로 ‘춘천 앙상블’(대표 고금석)이 창단되었으며, 이들은 1989년 4월 10일부터 16일까지 《광대학교》(뷔휘터 작, 고금석 연출)를 공연하였다.
공연 이후, 극단 ‘춘천 앙상블’과 ‘극단 연극사회’(대표 홍기동)는 춘천 지역 내 연극 인구의 분산과 경쟁보다 협력을 통해
양질의 창작을 도모해야 한다는 공감대 아래 통합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1989년 6월, 두 극단은 통합하여 ‘극단 태백무대’(대표 홍기동)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통합 이후 극단 태백무대는 같은 해 8월 3일부터 27일까지 서울 현대예술극장(대표 최불암)에서
《광대학교》를 장기 공연하며 도내 극단 최초로 서울 장기 공연을 성사시켰다.
또한 1989년 한 해 동안 《기적을 파는 백화점》(이어령 작, 홍기동 연출)을 포함해
총 8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이 해는 단체의 제도적 기반 역시 정비된 시기로, 극단 연극사회는 1989년 한국연극협회 춘천시지부 회원단체로 정식 가입하였다.
1989년 이전 극단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등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을 비판적으로,
다소 우회적인 방식으로 다룬 작품과 함께, 사무엘 베케트, 장 주네 등 부조리극 계열의 실험적 작품을 공연하며 도전적 성향을 띠었다.
그러나 1989년 이후에는 차범석의 《산불》, 윤조병의 《초승에서 그믐까지》 등 사실주의 계열의 희곡을 적극적으로
다루며 극단의 공연 색채를 확장해 나갔다.
1989년 서로 소극장 개관
1989년, 극단 태백무대는 춘천시 효자동 672-8번지(현 수협 건너편 지하)에 연습실 겸 소극장인 ‘서로 소극장’을 개관하였다.
1989년 당시에는 소극장의 활용보다는 연습실을 주력으로 사용하였다.
1992년에는 춘천 지역 청소년 연극단체들과 함께 연극 페스티벌을 자체 기획·운영하며 침체된 지역 연극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자 하였다. 1992년 서로 소극장에서 제1회 서로 소극장 연극페스티벌을 개최하였는데 참가 단체는
선교극단 ‘로고스’, 강원대학교 극회 ‘영그리’, 강원고등학교 극회 ‘파란자전거’, 춘천기계공고 극회 ‘뒷두루’, 청소년 극회 ‘이엉’ 등 총 5개 단체가
참여하였으며, 각 단체가 4회씩 총 20회의 공연을 선보였다. 기존 성인 극단이 참여하지 않아 청소년연극제의 성격을 띠었지만,
800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축제는 1993년 제2회로 이어지며 지속적으로 운영되었고, 춘천 시내 고교 극회 3개 팀이 새롭게 참여함으로써
지역 청소년 연극이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였다.
한편, 극단은 1992년 4월 제9회 강원연극제에 윤조병 작, 홍기동 연출의 《초승에서 그믐까지》를 출품하여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이어 같은 해 5월 말 제주에서 열린 전국지방연극제에 강원도 대표로 참가하였다.
극단 연극사회는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총 12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으며, 이 가운데 11편은 홍기동이 연출하였다.
이 시기에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주인석의 《불감증》, 이어령의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차범석의 《산불》,
김지하의 《나폴레옹 꼬냑》, 패트릭 해밀턴의 《가스등》, 윤조병의 《초승에서 그믐까지》,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조광화의 《종로 고양이》, 주인석의 《통일밥》, 엄한얼의 《망명정부 주식회사》 등 사회 구조적 문제를 다룬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공연하였다.
이들 작품은 전쟁, 분단, 산업화, 빈부 격차, 인간 소외, 이념 갈등 등의 현실 문제를 주제로 삼아,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지역 연극계에서 사회비판적 연극의 흐름을 이끌었다.
1994년은 극단 태백무대 창단 10주년이 되는 해로, 이강백 작, 홍기동 연출의 《칠산리》를
제11회 강원연극제에 출품하여 최우수상과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이를 통해 강원도 대표로 선정되어 수원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12회 전국연극제에 참가하였다.
이 시기의 활동은 작품의 완성도와 예술적 전문성에 대한 도전으로 기록되며, 극단의 창작 역량을 전국 무대에서 증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극단명 다시 ‘연극사회’ 로 변경
1994년 《칠산리》 공연이후, 극단명은 다시 ‘연극사회’로 변경되었다. 이는 강원연극제에 참가하거나
지역 연극인 회의에 참석할 때, 강원도 태백 지역에서 활동하던 극단 ‘태백’과 극단 ‘태백무대’의 명칭이 혼동을 일으키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춘천의 극단 ‘태백무대’는 창단 당시 사용하던 명칭인 ‘연극사회’로 복귀하게 되었다.
1995년, 극단 태백무대의 창단 멤버이자 대표였던 홍기동이 강원도 강릉으로 발령받으면서 극단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중심 인물의 부재 속에서도 유정현(기획), 엄해용, 엄윤채, 김유진, 양흥주, 윤승균, 조민철 등이 극단의
운영을 이어나가며 《서툰 사람들》, 《택시 택시》, 춘천연극협회 연합공연 《태》 등을 무대에 올렸다.
이 시기에는 《산불》, 《가스등》, 《우린 나발을 불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칠산리》 등 한국 사회의 역사적 흐름과 맞닿아 있는
작품들과, 주목받지 못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유머와 풍자를 통해 풀어낸 작품들을 주로 공연하였다.
서로 소극장의 폐관과 공간 위기
1989년부터 연습실 겸 공연장으로 활용되던 ‘서로소극장’이 재정적 어려움으로 폐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연극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임대료 부담이 커졌고,
결국 극단은 공간을 유지할 수 없어 1997년 연습실 겸 소극장을 철수하게 되었다.
공간 부재의 위기 속에서도 조민철, 양흥주는 극단 굴레의 황운기를 연출로 섭외하고,
굴레가 운영 중이던 ‘꿈의 소극장’에서 《늙은 도둑 이야기》(장진 작, 황운기 연출)의 연습을 진행하여
1997년 12월 21일부터 23일까지 공연을 올렸다. 이후 애민보육원에서도 해당 작품을 공연하였다.
공연 수익 일부는 이후 연습 공간 확보를 위한 자금으로 사용되었으며,
1998년에는 윤정환이 사용하던 운교로터리 인근 2층 공간을 임시 연습실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홍기동은 이 시기의 어려움을 아래와 같이 회고하기도 하였다.
“연극을 하던 선·후배가 거쳐간 땀과 눈물이 고여 있어 곰팡내와 짠내가 나던 곳, 우리에게 꿈을 주던 장소,
연습도 하고 공연도 하고 술도 먹던 곳인데... 언제 다시 그런 곳을 가질 수 있을까. 춘천을 떠난 지 2년이 지났다.
가고 싶은데...”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1997년 《늙은 도둑 이야기》 공연 팸플릿 대표 홍기동의 글 중에서)
공간 재건과 활동 재개 (1998~2001)
1998년, 홍기동이 강릉에서 춘천으로 다시 근무지를 옮기게 되면서 극단 활동에 복귀 할 수 있게 되었다.
엄윤채, 홍기동, 지근환, 양흥주, 조민철, 윤승균, 윤정환이 주축이 되어 12월에 《오장군의 발톱》(박조열 작, 홍기동 연출)을 춘천과 철원에서 공연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연습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에 극단원들은 뜻을 모아 춘천시 석사동(현 석사동 행정복지센터 인근)의
한 지하 노래방 공간을 임대하고, 단원들이 직접 리모델링하여 연습실 겸 소극장으로 재탄생시켰다.
이 공간은 1999년 2월 5일부터 16일까지 장기 공연된 《작은 할머니》(엄인희 작, 홍기동 연출)를 시작으로 극단의 창작 활동 거점이 되었다.
당시 회원들은 철거 작업부터 무대 설치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이는 공동체로서 극단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자 연극에 대한 헌신의 표현이었다.
두 번째, 서로 소극장의 폐관과 공간의 유실 (2001~2004)
1999년부터 2001년까지 극단은 석사동 지하 공간을 ‘서로 소극장’으로 활용하였다. 이 공간은 공연과 연습, 워크숍이 함께 이루어진 창작 중심지였으나,
2001년 건물 소유주가 변경되면서 소극장이 지하에 위치해 이미지가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퇴거 요청을 받게 되었고, 결국 폐관되었다.
이 시기 홍기동 대표 또한 원주로 근무지가 이동되면서 극단 운영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겹쳐 극단은 공간 부재와 운영 공백이라는 이중의 위기를 맞았다.
2001년에는 서로소극장의 폐관시기와 맞물리면서 객석 및 조명 바톤 철제를 활용하여 제18회 강원연극제에 출품한《칠수와 만수》무대 세트로 재가공하였고,
해당 작품은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에는 후평동 산림조합 근처의 5층 옥탑 조립식 건물을 연습실로 사용하였으며, 이곳에서 《김치국씨 환장하다》, 《용띠 개띠》 등을 연습하고 공연하였다.
그러나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2004년 5월 연습실을 다시 폐쇄하게 되었고, 이후 2006년 4월까지는 극단의 작품 활동도 중단되었다.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도 극단은 공연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2006년, 엄윤채 연출, 장진 작의 《서툰 사람들》을 제23회 강원연극제에 출품하기 위해 양흥주, 전은주, 엄해용 등이 참여하였고,
연습은 엄윤채 단원의 직장 내 빈 공간을 활용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연습 공간의 부재는 극단 운영에 있어 지속적인 어려움을 초래하였으며,
이는 극단의 활동이 안정적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2007년에는 연극사회가 봄내극장 창작관에 사무실을 마련하게 되었지만, 해당 공간은 연습에는 적합하지 않아 사무용도로만 사용되었고,
실제 창작 활동 공간으로서의 역할은 수행할 수 없었다.
2008년, 김유정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춘천에 소재한 극단 아트-3씨어터, 극단 도모, 극단 굴레, 극단 연극사회는
김유정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공연을 준비하였다. 이때 극단 연극사회는 김유정 원작을 바탕으로 변유정이 각색·연출한 《금 따는 콩밭》을 무대에 올리며,
다소 침체되어 있던 극단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게 되었다. 연습 공간이었던 봄내 창작관이 규모상 연습에 적합하지 않아,
단원 지유현의 도움으 로 석사동에 다시 연습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후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2009년에는 김정숙 작, 홍기동 연출로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을 무대에 올려 제26회 강원연극제에 출품하였으며,
은상과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는 극단 창단 2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2009년 9월 4일부터 5일까지 춘천연극제 초청작으로
조세희 원작, 홍기동 연출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하였고,
아카펠라 팀의 실연을 포함하는 새로운 시도가 더해지며 약 1,500명의 관객이 공연장을 찾았다.
이 작품은 연극사회의 대표작이자 창단 25주년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무대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2009년 말, 극단의 중심이었던 홍기동이 다시 원주로 발령을 받아 춘천을 떠나게 되었고,
극단원 지유현의 지원으로 잠시 사용했던 연습 공간도 사용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서 극단은 또 한 번 공간의 부재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2010년에는 석사동 퇴계막국수 근처 지하에 연습실을 마련하게 되며 창작 기반을 재정비하였다.
김유정 프로젝트 공연
창단 26주년이 되는 2010년, 연극사회는《금 따는 콩밭》의 성과를 계기로 김유정 문학의 연극화를 체계적으로
기획한 '김유정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총각과 맹꽁이》, 《솥》, 《산골》 등을 봄내극장에서
차례로 무대에 올렸으며, 김유정 작품 특유의 한국어 전통미와 강원도 향토미를 연극적으로 구현해낸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지역 문학을 바탕으로 한 창작극이라는 점에서, 극단은 문화적 지역성과 예술적 실험을 동시에 시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2011년 이후, 극단원들은 각자 외부 극단의 작업에 참여하거나 개인 작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활동이 분산되기 시작하였다.
2010년 연습 공간으로 사용하던 퇴계동 지하 연습실 역시 운영비 부담으로 인해 지속 사용이 어려워졌고
2013년 공간의 사용을 종료하게 된다. 이후 공간의 부재와 극단 대표의 춘천 부재와 맞물리며 내부 결속력의 약화로 이어졌다.
중심 배우였던 양흥주는 극단 노뜰의 작업에 참여하였고, 전은주, 변유정, 엄해용, 최승미 등도 극단을 탈퇴하고
개인 활동에 집중하게 되었다. 반면 윤승균, 조민철, 윤정환, 이병범, 홍기동, 엄윤채 등은 극단에 남아 활동을 이어갔으나,
예전과 같은 집단 중심의 활발한 제작 체계는 유지되지 못했다.
인력 분산의 상황 속에서도 연극사회는 1년에 한 편 정도의 공연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명맥을 유지하였다.
2012년에는 박근형 작, 홍기동 연출의 《너무 놀라지 마라》를 공연하였고,
2013년에는 이강백 작, 홍기동 연출의 《물고기 남자》, 2014년에는 최창근 작, 홍기동 연출의 《봄날은 간다》를 무대에 올렸다.
2016년에도 정보근 작, 홍기동 연출로 《응시》를 공연하며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의 공연들은 대체로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이 시기에도 공연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공연과 휴지기 진입
2018년에는 윤소정 작, 홍기동 연출로 《숲은 여전히 그곳에》를 공연하였다.
이 작품은 학교폭력으로 인해 가족 해체의 위기를 겪는 가족의 이야기를 이팝나무의 상징성과 연결지어 풀어낸 작품으로,
연극사회가 오랜 시간 다뤄왔던 사회참여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끝으로 2025년 현재까지 극단 연극사회는 공연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휴지기에 접어든 상태이다.
공간의 부재, 재정적 어려움, 주요 인력의 극단 탈퇴동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극단의 창작 활동은 일시 중단되었고,
현재는 재정비가 필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극단 연극사회가 갖는 의미
극단 연극사회는 춘천에서 세 번째로 창단된 극단으로, 당대 젊은 연극인들이 모여 보다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연극 활동을 시도한 단체였다.
이들은 연극을 단순한 취미나 부업이 아닌 전업 예술로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와 창작 노력을 기울였다.
지역이라는 지리적 한계 속에서도 전업 연극인의 삶을 지향하며 활동을 지속했다는 점은 당시로서는 매우 도전적인 선택이었으며,
그만큼 뜨거운 연극 정신과 시대를 향한 예술적 응시가 담겨 있었다.
특히 연극사회는 6·25 전쟁 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억압된 개인의 목소리를 담은 희곡들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연극이 단순한 오락이 아닌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장르임을 실천해왔다.
이러한 작품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시대와 사회를 성찰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지역 연극계에 깊은 인문학적 자취를 남겼다.
또한 연극사회는 청소년 극단 ‘이엉’을 조직하여 청소년 연극인을 양성하는 데에도 힘썼다.
이 활동은 단순한 청소년 연극 교육을 넘어, 연극 전문 인력으로의 진입 통로를 열어준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연극을 접하기 어려웠던 지역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였고,
이를 통해 실제로 춘천 연극계를 이끄는 주요 연극인인 양흥주(현 개인활동), 김자영(현 춘천여성예술단 마실) 등을 배출하였다.
이처럼 극단 연극사회는 지역 연극문화의 다양성과 전문성을 지향하며, 춘천 연극의 중추적인 기반을 형성한 극단으로 기록된다.
공연 주제와 작품 경향
시대 문제를 연극으로 고발하는 작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우린 나발을 불었다》, 《오장군의 발톱》, 《불감증》, 《칠산리》,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산불》 등의
작품은 각각의 시대가 지닌 사회적 현실과 구조적 폭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침묵당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억압된 현실에 대한 저항을 통해 사회 변화를 촉구하고자 하였으며,
무관심이 전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인간성을 상실하게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극단 연극사회는 이러한 작품의 공연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사유의 장으로서 연극의 역할을 실천해 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회 구조에 대한 유쾌한 비판
장진 작 《허탕》, 《서툰 사람들》, 이상우 작 《늙은 도둑 이야기》와 같은 작품을 통해 극단은 웃음을 코드로 삼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 구조적 모순에 대한 우회적 비판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공연을 통해 연극은 웃음을 통해서도 사람의 내면을 치유하고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회복적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김유정 소설의 공연화
강원도 춘천을 대표하는 문인 김유정의 소설을 연극화하기 위해 극단은 ‘김유정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총각과 맹꽁이》, 《솥》, 《산골》 등을 봄내극장에서 공연하며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이들 공연은 원작에 담긴 한국어의 전통미와 강원도 특유의 향토미를 충분히 살려내는 동시에, 연극적 재미와 해학을 잘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