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혼성인 박완서”박완서는 극단 ‘혼성’의 창단 멤버로, 1960년대 후반부터 춘천에서 연극 활동을 시작하여 60여 년간 지역 연극의 실천과 확산에 기여해온 연출가이다. 연극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나 체계가 부족했던 시기부터 현장 중심의 실천을 통해 연극의 영역을 확장해왔으며, 춘천을 연극 도시로 정착시키는 데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생애와 연극 입문
박완서는 강원도 춘천시 죽림동에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입학 직후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하여 중학교까지 부산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 연기에 대한 흥미보다는 연출에 관심을 가졌고, 배우로 무대에 서기보다는 연출자로서 연극 활동을 시작하였다. 연출가 임영웅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실무 중심의 연극 훈련을 경험하였다.
춘천 연극 활동의 시작 (극회 ‘사계’, 극단 ‘샘밭’, 극단 ‘혼성’으로)
한양대학교 재학 중 여름방학을 맞아 춘천으로 귀향한 박완서는 지역 대학극 지도를 맡으며 본격적인 지역 연극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성심여자대학교의 《안네의 일기》, 강원대학교 극회 영그리 창단공연 《꽃을 사절합니다》, 춘천교육대학교, 춘천간호대학교 등의 연극부 연출을 지도하였으며, YWCA에서는 여성 대상 연극 교육을 진행하였다.
이 시기 지역의 연극에 관심 있는 인물들과 교류를 통해 ‘극회 사계’를 창단하였다. 창단 당시 주요 구성원으로는 고동율(대표), 김의환(기획), 이하륜(극작, 필명: 이철), 박완서(연출), 홍규섭(섭외), 최지순, 장정임, 성성용(연기)이 있었다. 창단 공연으로는 1970년 9월 고동율 작, 박완서 연출의 《오뚝이의 욕망》을 시작으로, 12월에는 윤대성 작 《출발》, 1971년 1월에는 이근삼 작 《거룩한 직업》을 연달아 연출하였다. 당시 춘천은 공연장이 거의 없어 원다실, 미미다실과 같은 다방이나 대영예식장의 아케이드 공간 등에서 공연을 진행하였다. 이러한 형태는 춘천 지역에서 ‘살롱 드라마’ 형식의 시초로 평가된다.
1971년 강원도립문화관이 건립되며 극회 ‘사계’와 극단 ‘산맥’(1) 은 합동 공연을 통해 윤조병 작, 박완서 연출의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를 무대에 올렸고, 이후 두 단체는 통합하여 같은 해 9월 ‘극단 샘밭’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후 고동율 작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고동율 작 《혼성》을 공연하고, 극단명을 ‘극단 혼성’으로 변경하여 현재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1) 극단 산맥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1962년 춘천으로 돌아온 이형근이 1968년 창단하였다.
국제 교류 및 1993년 춘천국제연극제 창설
극단 혼성은 1980년대부터 해외무대에 진출하였다. 1986년 스위스 라쇼드퐁 국제연극제(IATA/AITA)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여 《양반전》을 박완서 연출로 공연하였다.
《양반전》은 박완서의 대표작이며, 가장 애정을 가진 작품으로 회고된다.
이후 아일랜드, 미국, 일본 등 국제 아마추어 연극제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며, 한국 연극의 국제적 교류에 기여하였다.
1990년대에는 IATA 아시아 본부 회장을 역임한 연출가 방태수의 제안으로 국제 교류에 적극 참여하였고, 1993년 춘천국제연극제의 개최를 준비하면서 40여 개국을 방문하며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박완서는 극단 혼성 단원인 최지순, 김경태 등과 함께 춘천연극제의 조직과 실행에 기여하며 춘천국제연극제(현 춘천연극제)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연극 철학 및 작업 방식
박완서의 연출 철학은 “현장에서의 실천”과 “지속적인 축적”에 기반한다. 그는 작품 해석에 있어 문헌 연구와 인물 분석을 중시하였으며, 연습 도중 막히는 순간이 오면 스스로 연습을 중단하고 사고의 시간을 가지며 감각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박완서는 담배를 즐겨 피웠으며, 연습 도중 작품 진행이 막히는 순간에는 연출자로서 ‘스톱’을 외친 뒤 혼자 담배를 피우며 사고의 시간을 가졌다고 회고한다.
대사 중심의 해석보다는 무대 현장의 리듬과 인물의 심리 흐름에 집중하며 연출 작업을 수행하였으며, 꾸준한 메모와 기록을 통해 연극적 사고를 이어갔다.
후배에게 남긴 메시지와 현재
박완서는 후배 세대에게 특별한 조언보다는 ‘믿음’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렵겠지만 잘 해낼 거라고 믿습니다.”
“선배 세대가 다 하지 못한 것을 후배들이 이어나가길 바랍니다.”
“할 말은 많지만… 다 끝난 다음에나 해줄 수 있겠네요.”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 속에는 연극에 대한 그리움, 열정, 그리고 아쉬움이 여전히 그의 표정과 말투에 담겨 있다.
2025년 현재 박완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중단한 상태이나, 연극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그는 연극 활동에 대해 “그저 지나온 시간이며, 지나고 나니 부끄럽지만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고 회고하였다.
“인생은 커다란 무대이다. 인간의 참모습을 찾고자 하는 관객과, 나 자신에게 또 다른 삶을 연기로 보여주면서 더 나은 생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진정한 나를 찾는 작업이 연극이다.” (박완서, 2010년 6월 「강원가정복지신문」인터뷰 中)
※ 위의 내용은 2025년 2월 박완서와 직접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며, 박완서의 건강상 이유로 일부 답변을 구체적으로 청취하지 못한 점을 밝히며, 인터뷰를 기반으로 정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