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시대를 잇는 강원 연극의 산증인”생애와 연극 입문
최지순은 강원도 춘천시 동면 감정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동면 감정리에서 보냈다. 전쟁 직후의 어려운 시기였으나, 그는 이 시기를 연극의 기초가 마련된 시기로 회고한다. 매년 추석 전날, 마을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동네 한가운데에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연극을 공연했던 경험은 그의 연극 활동의 원형이 되었다. 한지로 만든 무대 장치, 남포등을 밝힌 야간 공연, 주민들의 자급자족 방식의 협력은 공동체 기반 예술 실천의 출발점이었다.
청년 시절, 방송과 연극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춘천 KBS를 직접 방문하여 성우 실력을 평가받고, KBS 춘천방송국 성우 1기로 데뷔하였다. 이후 성우 활동을 기반으로 무대 연극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갔다.
극단 활동과 지역 연극 운동
1968년 춘천에서 연극인 이형근이 극단 ‘산맥’을 창단하면서 지역에 연극 기반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즈음 춘천에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KBS 성우와 지역에서 연극에 뜻을 두었던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1970년 극회 ‘사계’가 결성되었으며, 최지순, 홍계섭, 임세한, 김제율, 장정임, 성희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하륜, 고동률, 김의환, 박완서, 성성용 등도 활동에 동참하며 극회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1971년 극회 ‘사계’와 극단 ‘산맥’이 통합되어 극단 ‘샘밭’이 창단되었고, 1974년에는 ‘극단 혼’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활동을 지속하였다. 춘천 간호전문대, 춘천교육대학교, 강원대학교의 청년들과 함께 연극운동을 전개하였고, 당시 공연장이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춘천시 옥천동의 원다실 등 대체 공간을 활용하여 연습과 공연을 이어갔다.
그는 직장생활과 연극 활동을 병행하며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장으로 근무하였다. 퇴근후에는 사무실을 회의실 겸 연습실로 전환하여 저녁과 주말 시간을 연극에 할애하였다. 자료와 정보가 부족했던 시기, 그는 서울의 연극 전문가를 초청하거나 자문을 하며 지역 연극의 질적 향상을 위한 학습과 교류에 힘썼다.
주요 작품과 국제 교류
최지순은 지역 문학, 역사, 인물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고 연출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고동율 작, 박완서 연출의 《오뚝이의 욕망》, 이하륜 작, 최지순 연출의 《정선 아리랑》, 이효석 원작, 이하륜 각색, 최지순 연출의 《메밀꽃 필 무렵》, 이외수 작 《견습 어린이》, 이하륜 작, 최지순 연출의 《통한》 등이 있다.
특히 윤조병 작, 박완서 연출의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를 강원도립문화관 개관 기념작으로 공연할 당시, 그는 서울로 간판미술가 최연호 화백을 직접 찾아가 무대 미술을 요청드려 무대 배경을 완성하였다. 이 사례는 지역 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완성도 높은 무대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적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국제 교류 활동도 활발히 이어갔다. 극단 혼성 단원으로서 스위스 라쇼드퐁 세계연극제에 《양반전》을 출품하였고, 미국 아이오와 국제연극제에는 《목소리》, 인도 찬디갈 세계연극제에는 《정선 아리랑》으로, 아일랜드 던다크 국제연극제에는 《배비장전》으로 참가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한국 지역 연극의 예술성과 독자성을 해외에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각 지역에 흩어져 활동하던 강원지역의 연극인 조직에 기여
1970년대 이후 그는 극단 혼성의 대표를 넘어 지역 연극의 기반 조성과 협력 체계 형성에 기여하였다. 1975년 ~ 1984년 강원도연극협회장을 지내면서 강원도 연극인 세미나, 연극 워크숍, 문예진흥원 공동 세미나 등을 지역에 개최하여 정보교류 및 강릉, 속초, 원주, 춘천을 연결하는 연극 네트워크 구축에 힘썼다. 또한 강원연극협회 내에 ‘강원예술상’을 제정하고 초기 상금을 개인이 사비로 부담하면서 연극인의 사기 진작과 예술적 성취를 장려하였다.
정선, 춘천 등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극화하는 작업도 꾸준히 이어갔다. 이하륜 작 《정선 아리랑》, 《메밀꽃 필 무렵》, 《통한》 등은 지역성과 인물을 중심에 둔 창작극의 초기 사례로 평가된다. 이 중 《정선 아리랑》은 이하륜과 협업한 대표작으로, 최지순이 특히 애정을 갖고 지속적으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문화행정과 무대로의 복귀
최지순은 춘천예총 회장, 강원연극협회장, 강원예총 회장, 춘천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예술행정과 문화 정책의 기반 조성과 실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2014년 병환으로 활동을 중단한 시기를 거쳐, 2022년과 2023년에는 김혁수가 작·연출한 강원 도립극단의 《유정, 봄을 그리다》에 출연하며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생애 전반에 걸쳐 연극 배우로서의 창작 활동과 문화행정으로 조직 운영을 병행하며 지역 문화예술의 기반 조성과 발전에 기여해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그의 회고는 연극 무대가 단순한 직업적 공간을 넘어, 삶의 근간이자 돌아가고 싶은 정서적 근원지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연극은 인생의 거울입니다. 내 인생이 연극이고, 연극이 곧 나의 인생입니다.” 라는 그의 발언에는 춘천 연극의 태동기부터 함께해온 그의 오랜 여정과, 그 속에서 겪은 어려움과 열정을 아우르는 삶의 궤적이 담겨 있다.
후배 연극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이전에는 카페, 다방, 예식장 등을 빌려 연습하고, 공연장을 찾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고, 후배들은 보다 나은 조건 속에서 연극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역 연극이 다시 꽃피울 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언급은 연극 환경의 변화를 체감한 선배 연극인으로서의 조언이자, 지역 연극의 지속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함께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