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목소리로 무대를 지켜온 연극인”생애와 연극 입문
장정임은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하여 초등학교까지 원주에서 생활하였고, 사범학교 입학을 위해 중학교 시절 춘천으로 이주하였다. 연극과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학교 단체 관람으로 본 연극 《사육신》을 통해 이루어졌다. 원주고등학교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작품으로 기억을 하는데 이 연극은 당시 어린 관람자였던 장정임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나도 저런 것을 해보고 싶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67년에는 춘천 KBS 방송국에 성우로 입사하여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라디오 드라마와 입체 낭독 등 음성 중심의 프로그램이 주류였던 시대에 그녀는 낭독과 발성, 감정 표현을 통해 목소리 연기의 감각을 익혔고, 이를 기반으로 무대 연극에 대한 관심을 확대해나갔다.
1969년, 당시 강원연극협회장 이자 극단 산맥을 이끌어 오던 이형근의 권유로 연극 무대에 입문하게 되었으며, 첫 작품은 극단 산맥의 《다람쥐의 외출》이었다.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춘천뿐 아니라 원주에서도 공연되며 장정임의 공식적인 무대 데뷔작으로 기록된다.
연극 활동과 여성 연극인으로서의 위치
1960~70년대 춘천 연극계는 여성 연극인의 활동이 드물었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여성 배우들이 한두 편의 작품에 참여한 후 극단 활동을 중단하는 사례가 많았다.
1970년 극회 ‘사계’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며 《오뚝이의 욕망》 등에 출연하였다. 당시 춘천 지역에는 공연을 할 수 있는 공연장이 없어서 다방과 같은 협소한 공간에서 관객과 가까이 소통하는 형태로 진행되었으며, 정식 연습 공간이 없어 카페나 다방에서의 모임이 연습의 중심이 되었다. 이 시기 춘천시 옥천동 ‘원다실’을 운영하던 김의환의 다실은 비공식 연습실이자 회의 공간이자, 공연 공간이었다.
극단 혼성 시절에는 《위기의 여자》에 출연하며 장기 공연을 소화했고, 《쥐덫에 걸린 고양이》에서는 연습을 하던 주연 배우가 공연 3일정도를 남기고 갑작스러운 맹장 수 술을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역을 맡아 3일 정도만에 대사를 외우고 동선을 외워서 무대에 오른 경험도 있다. “밤을 세워서 대사를 외우고 동선을 연습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아찔해요” 라며 그때의 상황을 전한다.
이 작품은 결혼과 육아로 잠시 연극 활동을 중단하였던 장정임을 다시 무대로 복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극단 ‘혼성’에서 ‘춘천여성문화예술단’ 창단으로
2000년 춘천시장이었던 배계섭의 제안으로 지역 여성 예술인들을 모아 ‘춘천여성문화예술단’을 결성하게 되었다.
결혼, 육아로 연극 무대로 복귀하지 못하던 여성들을 중심으로 지역내 소외된 곳을 찾아가 공연으로 봉사를 하는 것이 초창기 창단의 주요 목표였다.
장정임은 ‘춘천여성문화예술단’을 창단하여 연극의 꿈을 가슴에 품고 지내던 여성연극인을 무대로 복귀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춘천여성문화예술단’ 은 양로원, 병원, 복지시설, 지역 학교 등 다양한 생활 현장을 중심으로 찾아가는 공연을 실천하였으며, 강원대학교 의과대학과의 협업을 통해 레지던트 의사와 환자의 역할극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지역 연극인의 경제활동으로 이어지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활동은 이전보다 안정된 환경 속에서 지속되었으며, 여성 연극인의 창작 기반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였다.
여성으로, 예술 활동과 육아의 병행
연극 활동과 육아를 병행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장정임은 극단 혼성에서 연극을 연습하던 시절 연습을 위해 집에 어린 아이들을 두고 나와야 했는데 그때는 녹 음테이프에 동화를 녹음해 놓고 아이들에게 다 돌아 가면 눌러서 들으라고 하며 연습실에 나와 연습을 하고, 연습이 끝나면 집에 두고 온 두 아이들이 걱정되어 연습이 끝나자 마자 집으로 급히 돌아가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예술 활동과 일상의 균형이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그 시절 연극에 대한 열정을 엿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등에서 전래동화를 들려주는 이야기 할머니 활동도 재미있게 했다고 전한다. 이는 세대 간 소통과 감성적 유대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지역 사회에서의 문화적 역할을 지속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예술관과 후배 연극인에 대한 기대
장정임은 연극에 대해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언급하며, 연극이 단지 공연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성찰을 동반하는 과정임을 강조하였다. “누군가에게 향기 나는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장정임이 연극을 통해 지향해온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후배 연극인들에게는 구체적인 방법론보다는 신뢰와 기대를 전하며, "이제는 여성 연극인도 많아졌고, 환경도 개선되었기에 후배들이 훨씬 더 잘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선배 세대가 미처 이루지 못한 과제를 후배들이 확장해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장정임에게 춘천은 단순한 공연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도시는 그녀가 연극을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었던 기반이자, 여성 연극인으로서 자리를 지켜온 삶의 무대였다.
장정임은 무대 위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지켜냈고, 사라졌을지도 모를 한 시대의 연극이, 이제 그녀의 이름과 함께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