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율은 1929년 강원도 고성군 고성읍에서 태어났다.1954년 관동대학 상학과를 졸업한 뒤, 속초중학교에 국어교사로 부임하며 교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955년에는 미술 특수교사 자격을 취득하였고, 1957년부터 희곡 습작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희곡〈소〉,〈천재는 노하다〉등을 자유문학사에 투고하였으나 탈락의 아픔을 겪으며 문학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으나, 창작의 끈은 놓지 않았다.
1965년 춘천중학교로 전근한 것을 계기로 춘천 연극계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같은 해 희곡〈통나무 다리〉로 경향신문에 가작으로 입선하며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이듬해인 1966년에는 희곡〈동의서〉로 경향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극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같은 해인 1966년, 고동율은 한국연극협회 강원도지부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강원도지부는 1967년 1월 13일 협회로부터 정식 인준을 받았다. 당시 초대 지부장은 이형근, 부지부장은 고동율이 맡아 지역 연극의 제도화에 기여하였다.
1970년에는 춘천 KBS 방송국에서 활동하던 성우 최지순, 장정임, 그리고 지역 연극인 김의환, 성성용 등과 함께 극회 ‘사계(四季)’를 창단하였으며, 초대 대표를 역임하였다. 같은 해 8월에는 극회의 창단 공연을 위해 희곡〈오뚝이의 욕망〉을 집필하였다.
이후에도〈파약〉,〈혹 땐 이야기〉,〈노 박사의 새〉등 다수의 작품을 집필하며 창작활동을 이어갔으나, 1972년 6월 13일 마지막 일기를 남긴 후, 같은 해 9월 10일 타 계하였다. 고동율은 강원도 연극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지역 연극 창작의 흐름을 주도한 대표적인 극작가로 기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