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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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 직후

춘천 연극을 논하기에 앞서 강원 연극사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45년 해방 이후 강제 징병되었거나 징용되었던 도민들이 속속 귀향하면서 다음과 같은 극단들이 창단되었다.

동해악극단(대표: 박상준), 극단 자립(대표: 서일), 신춘극단(대표: 홍종호), 극단 민협(대표: 최수경), 극단 청탑(대표: 배삼용) 등 총 5개의 극단이 해방과 더불어 억눌렸던 민족 예술에 대한 한을 뚫고 창단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동해악극단’은 1945년 창단되어, 대표 박상준 씨(가수 박재란의 부)와 단원 20여 명이 활동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극단이 화재를 당하면서 해체되었고, 대표였던 박상준 씨는 이후 경찰악대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극단 ‘자립’은 1946년에 대표 서일 씨를 중심으로 단원 20여 명이 참여하여, 유일하게 신극만을 공연할 것을 표방하며 창단되었다. 이들은 의욕적인 공연 활동을 펼쳤으나, 대표 서일 씨가 납북되면서 극단은 해체되고 단원들은 흩어지고 말았다.

‘신춘극단’은 1948년, 당시 춘천시 공무원이었던 홍종호 씨(대동청년단 활동 경력)가 대표로 극작과 연출을 맡고, 우갑택 씨가 연출과 함께 배우로도 활동하면서 창단되었다. 단원으로는 배삼룡, 김연파, 최수경 등 총 25명이 참여하여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특기할 만한 점은 당시 극단의 재정을 강원도에서 지원하였다는 것으로, 사실상 강원도 최초의 도립극단으로 평가된다.

같은 해, 극단 ‘민협’이 대표 최수경 씨와 우갑택 씨 등 신춘극단 단원을 중심으로 새롭게 창단되어, 의욕적인 공연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뒤이어 창단된 극단 ‘청탑’은 배삼룡(코미디언) 씨가 대표를 맡고, 손정배 씨, 윤도순 씨 등 20여 명의 단원이 참여하여 6·25 전쟁 발발 전까지 공연 활동을 이어갔다.

배삼룡의 자전적 회고록 『배삼룡의 울고 웃다 80년』에 따르면, 해방 직후인 1945년 겨울 귀국한 그는 당시 춘천을 자주 방문하던 ‘KPK 아리랑극단’, ‘호화선’, ‘무궁화’, ‘민협’ 등의 공연에 심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춘천에서 극단을 만들고 《로미오와 줄리엣》 풍의 악극을 공연해 춘천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횡성과 원주공연에서 흥행에 실패하자 서울로 떠난다. 그리고는 1950년 육군 군예대에 입대했다고 나온다.

다만, 여러 자료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배삼룡이 중심이 된 극단의 이름은 확실하지 않다.[1]

한편, 1947년 춘천중학교(6년제) 연극반에서는 지도교사 이선경의 지도 아래 중국 노신의 작품 《뇌우》와 김영수의 《황포강》 등을 공연하여 큰 갈채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1] 김원림,「공연자료를 통해 본 강원연극의 흐름」, 2008, (사)한국연극협회 강원도지회, p12.

2. 6.25 전쟁 직후 학생 중심의 연극 활동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6·25 전쟁이 발발하자 연극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휴전 이후에도 강원 연극계는 한동안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희곡의 특징은 전후의 현실 인식과 현실 참여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인간의 삶과 감동을 다룬 순수 희곡이 등장했다는 데에 있다.

전쟁으로 인해 학교들이 휴교되었다가 다시 개교되고, 사회 전반이 점차 질서를 회복해 가면서 연극계 역시 서서히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였다. 특히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작품이나, 시련을 극복하는 민족적 서사극이 고등학교 학예회를 중심으로 발표되며 연극의 맥을 이어가는 양상을 보였다.

학교들이 정상화되자 각 고등학교에서는 매년 학예회를 개최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연극 활동이 점차 부활하게 되었다.

이 시기 춘천고등학교와 춘천여자고등학교 연극반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변희천이 있다. 그는 후에 예총 강원도지부를 창립하고 초대 지부장으로서 10여 년간 지역 예술계를 이끌었으며, 당시에는 춘천고등학교의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주로 무대미술을 담당하였다. 연출은 박영서가 맡았고, 《뇌우》와 《내가 넘은 38선》 등의 작품이 춘천고등학교 강당에서 공연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한편 춘천여자고등학교에서도 이에 뒤지지 않고 활발한 연극 활동이 전개되었는데, 당시 영어교사였던 원선희가 연출을 맡고, 무대미술은 변희천이 협력하였다. 이들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를 무대에 올렸고, 당시 재학생이었던 백 모 양이 평강공주 역을 열연하여 큰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한편, 동국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이후 예총 강원도지부장을 역임한 바 있는 이형근은 1962년 아동극단 ‘개나리’(대표: 이형근)를 창단하면서 《개나리》, 《심청전》 등을 공연하였다. 그는 극본을 직접 쓰고 연출까지 맡으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66년 11월 25일에는 《낙랑공주》를 공연하여 지역 연극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1967년에는 춘천고등학교에서 《수양대군》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춘천여자고등학교에서는 고동율(본명: 양한석) 작 《동의서》 등의 작품을 통해 활동을 이어갔다.

1967년 5월에는 춘천교육대학교 부속초등학교가 《신데렐라》를 도 공보관에서 공연하였고, 당시 춘천 유일의 사립 초등학교였던 성수국민학교에도 연극반이 생기면서 1969년 4월에는 《신데렐라》와 《여우와 토끼》를 공연하였다. 지도교사 박주원의 열정적인 지도 아래, 학교 공연뿐만 아니라 전국학생연극경연대회에도 참가하여 입상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펼쳤다.

1972년 10월에는 춘천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 극으로 전세권 작, 김원림 연출의 《제5 방향》이 공연되었고, 한동안 침체되어 있던 고등학교 연극이 다시 부활되는 듯한 흐름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3. 1960년대 한국연극협회 강원도지부 인준(1967년)과 극단 ‘산맥’ 창단(1968년)

1962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문총)가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이하 예총)로 개편되면서 예총 강원도지부가 창립되었다. 그러나 다른 예술 분야에 비해 연극의 조직화는 다소 늦게 시작되었다.

1967년 한국연극협회 강원도지부 인준
학생들의 연극 활동은 학예회를 통해 간헐적으로 이어지다가, 1966년 11월 26일 한국연극협회 강원도지부가 결성되었고, 1967년 1월 13일 한국연극협회로부터 공식 인준을 받았다. 초대 지부장에는 이형근, 부지부장 고동율, 총무간사 이기원이 각각 선출되었다. 그 여세를 몰아 이형근 지부장은 1968년 극단 ‘산맥’(대표: 이형근)을 창단하였다. 1960년대 후반, 강원 연극계는 신춘문예를 통해 새로운 극작가들이 등장하며 활기를 띠게 되었다.

196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희곡 부문)에는 고동율의 《동의서》가, 한국일보 신춘문예에는 김정개의 《인형 4남매》가 각각 당선되었고, 19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는 이하륜의 《생일잔치》가 입선하면서 그동안 침체되어 있던 강원 연극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1968년 극단 산맥 창단
1968년, 극단 ‘산맥’은 5월 30일 춘천 소양극장에서 유치진 작, 이형근 연출의 《나도 인간이 되련다》를 창단 공연으로 무대에 올렸고, 이후 ‘개나리 문화제’ 등의 행사에도 참여하였다. 이들은 고동율 작 《수양대군》, 《동의서》, 《통나무 다리》, 《다람쥐의 외출》 등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춘천을 중심으로 활동한 주요 연극인으로는 이형근, 이기원, 박헌옹, 박종열, 박주원, 서효선, 최백 등이 있었다.

1969년 11월 29일에는 강원예술제의 일환으로 서울 극단 ‘자유극장’을 초청하였고, 추송웅과 김금지가 출연한 머레이 시스칼 작 《타이피스트》는 일반 극장이 아닌 예맥 다실이라는 살롱 공간에서 공연되었다. 이 공연은 도내 최초의 살롱 드라마 형태로 소개되었으며, 이후 춘천 연극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성심여자대학교 불어불문과에서는 매년 불어극 공연이 이루어졌고, 대학 내 정식 연극부가 창립되면서 의욕적인 작품들이 연이어 공연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울의 김정옥, 최치림, 김효경, 구문회, 추송웅, 홍석원, 심양홍 등 당대의 주요 연출가들을 초청하여 연출 지도를 받는 등 지역 연극 발전에 기여하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는 패기와 열정을 지닌 젊은 연극인들이 춘천으로 모여들었다. 당시 활동한 인물로는 극작가 고동율, 이하륜, 문공부와 세기영화사에서 활동하던 김의환,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박완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의 송만수,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출신의 성성용 등이 있다.

또한 KBS 춘천방송총국의 지역 드라마 ‘K.M 무대’에서는 《개나리꽃 피는 마을》, 《태백산맥》 등의 연속극에 성우 최지순, 홍계섭, 임세한, 김제율, 장정임, 성희 등이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하였고, 이들은 이후 춘천 연극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4. 1970년대 성인 극단의 창립과 활발한 대학극회

극회 ‘사계’ 창단
1970년 9월 20일, 춘천 예술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던 춘천시 옥천동의 ‘원다실’에서 극회 ‘사계’가 창단되었다. 대표는 고동율, 기획은 김의환, 극작은 이하륜(당시 필명: 이철), 연출은 박완서, 섭외는 홍규섭, 연기는 최지순, 장정님, 성성용, 성희, 최완순, 허견, 박정자가 맡았으며, 총무에는 임세한이 참여하였다.

창립공연으로는 고동율 작, 박완서 연출의 살롱드라마 《오뚝이의 욕망》을 원다실에서 공연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 윤대성 작의 《출발》, 《어쩌면 좋아》, 《거룩한 직업》, 윤조병 작의 《건널목 삽화》등을 공연하였으며, 당시 공연장이 마땅치 않아 ‘원다실’, ‘대영예식장’, ‘미미다실’ 등을 순회하며 공연을 이어갔다.

극단 ‘샘밭’ 창단
1971년 4월 20일, 도립문화관이 개관하면서 강원도 연극협회(지부장 박종률)는 개관 축하공연을 주최하였다. 도 출신 연극인 고설봉과 원주의 장상순 지부장을 비롯해, 극 단 ‘산맥’, 극회 ‘사계’ 등이 참여한 가운데, 윤조병 작, 박완서 연출의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가 5월 7일부터 8일까지 공연되었다. 이 공연은 당시 강원 지역의 주요 연극인이 모두 참여한 합동공연이었다.

합동공연 이후, 극단 ‘산맥’과 극회 ‘사계’는 보다 발전된 연극을 추구하며 1971년 9월 7일 삼천리호텔에서 극단 ‘샘밭’을 창단하였다.

대표는 김제율, 기획은 김의환, 연출은 박완서, 연기에는 최지순, 총무는 장정임이 맡았으며, 최백, 오하림, 홍규섭, 장덕원, 성성룡, 성희, 고경희, 최완순, 허견, 손창업, 김국경, 박계, 송만수, 이상근, 윤석영, 김석, 김원림 등 춘천의 주요 연극인들이 참여하였다. 창단공연으로는 하유상 작, 오하림 연출의 《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 무대에 올랐다.

극단 ‘혼성’으로 극단명 변경
그 무렵 극회 ‘사계’의 창립 대표였던 고동율이 병으로 작고하였으며, 1주기였던 1974년 2월 22일~23일에는 고동율 작 《혼성》을 추모작으로 공연하였다. 이후 극단은 ‘샘밭’에서 ‘혼성’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71년, 박완서가 제3대 강원도 연극협회 지부장으로 취임하면서 춘천을 중심으로 한 연극계는 일반극과 학생극 양쪽에서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성심여자대학교 연극부(1966년 창단), 강원대학교 ‘영그리’(1971년 4월 25일 창단), 춘천교육대학교 극회 ‘석우’(1970년), 춘천간호전문대학교 ‘나이팅게일’ 극회(1970년) 등이 활발한 공연을 이어갔다. 이들 대학극회는 릴레이 방식으로 대학극 축제를 이어갔으며, 1971년에는 성심여대의 《유식한 여인들》(5.21), 《도둑들의 무도회》(11.3), 《병자 3인》(12.5), 춘천간호전문대 ‘나이팅게일’의 《즐거운 여행》(5.28~29), 춘천교육대학 ‘석우’의 《용감한 사형수》(10.18), 강원대 ‘영그리’의 《꽃을 사절합니다》(6.13) 등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1972년 9월, 연극협회 강원도지부(지부장 박완서)는 문공부가 주최한 제1회 전국소인극경연대회(후에 전국새마을연극중앙경연대회로 개칭)에 참가하기 위해 태백 ‘새마을 극회’를 창단하고, 최지순을 대표로 선출하였다.

극단 ‘혼성’ 단원들과 춘천간호전문대 ‘나이팅게일’ 극회의 윤석영, 김복순, 김영매, 윤옥균 등이 함께 참여하여 박경창 작 《버드나무촌》, 천승세 작 《봇물이 터졌네》, 김상열 작 《옹고집전》 등의 작품으로 매년 출전하였고, 단체 장려상(2회)과 연출상(이기원) 등 개인상을 수상하였다.

1973년에는 YMCA, YWCA 등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연극 활동이 확대되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춘천선교부는 부활절을 맞아 극단 ‘혼성’과 공동 주최로 이경애 작, 박완서 연출의 《부활》을 공연하였고, 춘천 YMCA 대학부는 연극부를 창립하여 임희재 작, 김원림 연출의 《고래》를 공연하였다. 이어 이경애 작, 박완서 연출의 《회상의 미소》로 관객과 만났다.

1974년에는 극단 ‘혼성’(대표: 김의환)이 문공부 선정 전국 우수극단으로 지정이 되기도 하였으며 이언호 작, 박완서 연출의 《석전》을 공연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극단 굴레 창단
1974년 11월 1일, 춘천교육대학 연극부 ‘석우’ 출신 졸업생들이 새로운 극단 ‘굴레’를 창단하였다. 이름에는 ‘인간의 자유를 얽매는 사회구조의 변화를 지켜보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창단 멤버로는 조종록, 이영철, 오일주, 성낙중, 이현용, 남궁광, 김동호, 김봉학 등 ‘석우’ 출신들과 박태훈, 정세원, 송창언 등이 참여하였다.

초대 회장은 조종록이 맡았으며, 단원들은 연기자와 스태프의 구분 없이 돌아가며 역할을 수행하였다.

창단 공연은 1974년 12월 1일~4일 YMCA 회관에서 열린 칼 비트링거 작, 조종록 연출의 《은하수를 아시나요》였다. 이후 싱클레어 작 《제목은 당신이 정하십시오》, 홀훼디홀·미틀페스 원작 《용감한 사형수》, 볼프강·보르헤르프 작 《문 밖에서》, 톰 존슨 작 《철부지들》, 이언호 작 《어항》등을 이어서 공연하였다.

1975년 서울-춘천 간 교류 및 춘천 연극의 확장
1975년, 제12회 강원예술제의 일환으로 10월 20일에는 김유정 작, 최지순 연출의 《봄봄》이 공연되었다. 고설봉, 심양홍이 특별 출연한 이 공연은 극단 ‘혼성’의 성숙한 무대 전환점이 되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노경식 작, 심양홍·김경태 연출의 《소작지》를 공연하여 춘천과 서울 간 실질적인 교류를 이루었다. 이 작품은 홍천과 원주로의 순회공연도 이어졌다.

1975년 4월 20일에는 극단 ‘굴레’가 강원도립문화관 무대에 처음으로 오른 《용감한 사형수》를 공연하였고, 기존에 회의실이나 다방 등 소규모 공간에서 공연하던 이들이 대형 무대에 선 최초의 경험이 되었다.

1976~77년의 주요 공연 활동
1976년, 극단 ‘혼성’은 소설가 이외수의 동화를 희곡화한 《견습 어린이들》을 이기원 연출로 공연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1977년에는 윤조병 작, 박완서 연출의 《건널목 삽화》와 이효석 작, 박완서 연출의 《메밀꽃 필 무렵》을 평창 지역에서 순회공연하였다.

한편 극단 ‘굴레’도 활발한 공연을 이어갔다. 1976년에는 하유상 작, 정낙중 연출의 《도깨비 우화》, 이근삼 작, 조종록 연출의 《옹고집전》, 이외수 작, 정기용 연출의 《빈손으로 보내었던 그 겨우내 우리들》을 무대에 올렸고, 1977년에는 이언호 작, 이현용 연출의 《어항》을 공연하였다.

1978년 지역 인물의 연극화 시도
1978년 10월, 강원예술제 참가작으로 의암 유인석 선생의 의병 항쟁사를 다룬 이하륜 작, 최지순 연출의 《통한》이 공연되었다. 30여 명의 배우가 출연한 대작으로, 강원대학교와 춘천교육대학교 연극부가 합동으로 참여하였다. 11월 18일에는 의암 선생의 고향인 춘성군 남면 발산중학교에서 순회공연도 이루어졌다.

1979년에는 극단 ‘산맥’(대표: 이기원)이 재창단되어 이하륜 작, 이기원 연출의 《의복》을 공연하였으나, 이후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1970년대 춘천 연극은 춘천연극의 시작을 알리며 지역의 정서와 극단별 창작 욕구가 활발하게 분출되었으며, 이를 통해 지역 연극의 창작 기반을 모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고동율의 《통나무 다리》, 《혼성》, 《오뚝이의 욕망》, 이외수의 《견습 어린이들》, 이효석 원작의 《메밀꽃 필 무렵》, 이하륜의 《통한》, 김정개의 《다람쥐의 외출》, 김유정 원작의 《봄봄》 등이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은 198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이하륜 작 《한오백년》과 《정선 아리랑》 등으로 이어진다.

5. 1980년대 춘천의 공연활동

1980년 극단 예맥 창단
1980년 10월, 춘천에 극단 ‘예맥’이 창단되었다. 연출가 윤고성을 비롯해 박동일, 김미애, 이성규, 이해곤, 홍기옥, 윤재호 등이 모여 창립 단원으로 참여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19일부터 22일까지 헨릭 입센 작, 윤고성 연출의 《인형의 집》을 초연한 데 이어 12월 26일부터 28일까지 앙코르 공연을 진행하였다.

같은 해 10월 25일부터 11월 7일까지는 윤고성 작·연출의 《양심이 피곤해요》를 ‘비탈에 선 카페’에서 장기 공연하며 많은 젊은 관객을 확보하였다. 이 작품은 지방 연극이 새로운 관객층을 형성하며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1982년에는 셰익스피어 원작 《오셀로》를 춘천시립문화관에서 10월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8일간 장기 공연하였다. 이 공연은 연일 관객이 장사진을 이룰 정도로 흥행에 성공하였으며, 초대형 무대를 활용하여 연극의 상업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상징적인 사례로 남았다.

1983년에는 춘천시 옥천동 39번지 건축사협회 지하 41평 공간에 조립식 무대를 활용해 150석 규모로 조성된 아담한 소극장 ‘예림사랑’(대표: 윤고성)이 개관되었다. 개관 기념 예술 행사로 2월 6일부터 8일까지 극단 ‘혼성’이 참여하여 안톤 체홉 작, 최지순 연출의 《곰》을 공연하였다. 그러나 그해 여름 장마로 인해 소극장이 침수되며 폐관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 극단 ‘굴레’는 해체 위기를 겪었다. 1974년 창단 당시만 해도 단원 11명이 모두 춘천에 거주하였으나, 대부분 교대 출신이었던 단원들이 1975년부터 1978년 사이 순차적으로 교사로 발령되며 춘천을 떠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굴레는 겨울방학을 이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조차 지속하기 어려워지며 일부 단원들 사이에서 해단 논의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극단 ‘굴레’의 창단 멤버였던 이영철은 교사직을 과감히 그만두고 극단 운영에 전념하기로 결심하였으며, 비(非)교대 출신 일반인에게도 입단 문호를 개방하며 새로운 단원을 받아들이는 구조로 전환했다. 그 결과, 극단 ‘굴레’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연극인들의 참여 속에 1980년대 초반 대표작들을 잇달아 선보일 수 있었다.

특히 1982년에 공연된 톰 존스 원작, 조종록 연출의 《철부지들》은 춘천 지역의 현실에 맞게 각색하여 관객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지방 연극의 창작 역량을 새롭게 조명받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 극단 ‘혼성’은 퀸테로스 작, 최지순 연출의 《햇빛 밝은 아침》을 공연하였으며, 창단 10주년을 기념하여 그간의 공연 자료와 의상, 소품, 인쇄물 등을 모아 춘천시립문화관 전시실에서 일주일간 전시회를 열었다.

바로 뒤이어 극단 ‘혼성’이 태백문화제에 참가하여 이하륜 작, 최지웅 연출의 《정선 아리랑》을 공연하였으며, 1983년에는 《한오백년》을 공연하였다. 특히 《정선 아리랑》은 정선군 북면 여량의 아우라지 나루터와 남면 별어곡리 한치마을 등을 수차례에 걸쳐 직접 답사하는 등 높은 예술적 헌신과 열정을 드러낸 작품이었다.

1980년대 초반 춘천의 연극 활동은 극단 ‘혼성’과 극단 ‘굴레’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공연 작품 수와 공연 횟수 모두 1970년대에 비해 현저히 증가하였다.

극단 ‘굴레’는 《철부지들》, 《엘리베이터》, 《봉의산성》 등을 공연하였고, 극단 ‘혼성’은 《곰》, 《모든 어머니의 죽음을 추모함》, 《족보》, 《한오백년》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며 작가와 관객 모두로부터 의미 있는 공연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1983년에는 춘천시와 춘성군이 공동 개최해오다 중단되었던 ‘개나리문화제’가 ‘소양제’로 명칭을 바꾸어 재개되었으며, 이 행사에서 강원도 민요를 소재로 한 《한오백년》을 공연함으로써 지역성과 상징성을 더하였다.

1984년 2월, 대수선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한 춘천시립문화관에서는 극단 ‘굴레’가 김시라 작, 이영철 연출의 《품바》를 공연하며 강원 지역 순회공연을 진행하였다. 같은 해 5월에는 김정개 작, 이영철 연출의 《봉의산성》, 7월에는 그림형제 원작, 이영철 연출의 《백설공주》, 10월에는 김상열 작, 이영철 연출의 《그대의 말일 뿐》이 연이어 무대에 올랐다. 특히 《그대의 말일 뿐》은 강원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전국연극제에서는 우수상(문화공보부 장관상)과 연출상을 수상하였다.

1985년 초연된 김상열 작, 이영철 연출의 《철수야》 역시 극단 ‘굴레’의 대표작 중 하나로, 1990년 강원연극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전국연극제에 출품되어 장려상을 받았다. 이후 지방 순회공연은 물론 서울 초청공연도 이루어졌다.

1984년 극단 ‘카오스’ 창단
1984년 12월에는 춘천에서 극단 ‘카오스’(대표: 원태경)가 창단되었다. 김광진, 홍기동 등의 단원을 중심으로 죠반니노 꽈레스키 작, 김광진 연출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12.20~30)이 창단 공연으로 무대에 올랐으며, 이듬해인 1985년에는 조세희 작, 홍기동 연출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테네시 윌리엄스 작, 홍기동 연출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김용락 작, 김광진 연출의 《화해》 등 여러 사회비판적 성격의 작품들이 연이어 공연되었다. 이후에도 1986년에는 장폴 사르트르 작, 홍기동 연출의 《출구 없는 방》, 이병도 작, 강욱 연출의 《다리 위 다리 밑》이 무대에 올랐다.

1985년, 연습 공간이 부족했던 극단 ‘혼성’과 극단 ‘굴레’는 춘천 남부시장 지하의 폐업한 목욕탕을 개조하여 남탕과 여탕 공간을 각각 연습실로 활용하였다. 그러나 이 공간은 1년도 채 사용하지 못한 채 새로운 입점자가 들어서게 되면서 연습실의 부재가 이어지면서 연습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1986년, 극단 ‘혼성’ 세계 무대의 문을 열다
1986년, 극단 ‘혼성’(대표: 최백)은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IATA(세계아마추어연극협회)가 주관한 제9회 스위스 라쇼드퐁 비엔날레에 참가 극단으로 초청을 받은 것이다. 이는 당시 IATA 한국본부장이었던 방태수의 적극적인 조력과 극단 ‘혼성’의 연극에 대한 열정과 참가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극단 ‘혼성’은 IATA라는 조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서울에서 활동중이던 극단 에저또의 연출가 방태수와의 만남을 통해 세계 연극계에 대한 관심을 키우게 되었고, 국제 연극제 참가 방식에 대해 실질적인 정보와 협력을 얻게 되었다.

1986년 스위스 라쇼드퐁 비엔나레 국제연극제에 극단 ‘혼성’은 유현종 작, 박완서 연출의 《양반전》을 공연하였으며, 이 작품은 공연 당시 스위스 현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공연이 끝난 후 8차례의 커튼콜이 이어지는 등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은 극단에게 큰 성취감을 안겨주었으며, 춘천 연극이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

지역에 신선한 바람이 된 아동극과 청소년 연극
1980년대에 들어 극단 ‘굴레’는 아동극과 청소년극으로 활동의 시야를 넓혔다. 단원 대부분이 교사였기 때문에 연극의 교육적 효과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교육 현장에서도 연극을 교육에 활용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났다.

1984년 7월 춘천시립문화관에서 초연된 《백설공주》를 시작으로, 1990년대에는 《장화 신은 고양이》, 《숲속의 대장간》 등 아동극과 인형극 제작을 꾸준히 이어갔다. 또한 윤대성 작, 이영철 연출의 청소년극 《방황하는 별들》을 공연하여 1986년과 1989년에는 지역 학교 단위로 단체 관람이 이어질 만큼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이 작품은 《불타는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개작되어 공연되며 극단 ‘굴레’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였다.

《방황하는 별들》의 공연을 계기로, 1987년 4월 극단 ‘굴레’는 청소년 극단을 창단하였으며, 이때 참여한 중·고등학생 중 이상수 (현 극단 굴레씨어터 소속)등 일부는 훗날 춘천연극계의 주요 단원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987년, 지방 희곡 작가의 발굴 및 육성을 위한 노력
1987년 강원 연극계에서는 지방 희곡 작가의 발굴과 육성을 위한 자생적 노력이 활발히 일어났다. 연출가 고금석을 중심으로 희곡 창작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졌고 극단 ‘혼성’ 역시 지역 극작가를 배출하거나, 지역 특색이 담긴 희곡을 공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러한 시도와 의지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1989년, 소극장 개관이 되다.
1989년 6월, 극단 ‘혼성’은 춘천 후평동에 소극장겸 연습실을 마련하였다. 같은 시기, 극단 ‘춘천앙상블’과 극단 ‘연극사회’가 통합하여 극단 ‘태백무대’(현 연극사회)를 창단하고, 기존 춘천앙상블의 연습실을 ‘서로소극장’(현 수협 건너편)으로 꾸며 소극장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극단 ‘카오스’는 “연극 속에서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연극을 하겠다”는 의지로 방향을 재정립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극단 ‘굴레’는 《방황하는 별들》의 공연 성공으로 재정적 안정을 찾은 뒤, 1989년 9월 춘천 요선동에 연습실 겸 소극장인 ‘굴레소극장’을 개관하였다. 이를 기점으로 단원의 수와 공연 작품 수, 공연 횟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개관 기념으로는 《그대의 말일 뿐》을 무대에 올렸으며, 이후 1990년 초반까지 《낚시터 전쟁》, 《철수야》, 《다섯》, 《불타는 별들》 등의 작품을 잇달아 공연하였다.

같은 해, 극단 ‘혼성’도 연습실 겸 소극장을 개관하고, 기념 공연으로 안종관 작, 김경태 연출의 《토생전》을 무대에 올렸다. 또한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과 연극인 저변 확대를 위해 ‘강원청소년연극워크숍’을 8월 14일부터 20일까지 ‘혼성소극장’에서 개최하였다.

또한, 1989년 극단 ‘혼성’은 인도 찬디갈에서 개최된 연극 올림피아드에 이하륜 작, 최지순 연출 《정선 아리랑》으로 참가하여 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며 국제 무대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89년 춘천앙상블과 연극사회의 통합하여, ‘태백무대’로 개칭
1989년 4월 10일에는 직업 극단을 표방한 ‘춘천앙상블’(대표: 고금석)이 창단되었으며, 창단 공연으로 뷔휘테 작, 고금석 연출의 《광대학교》를 무대에 올렸다. 이후 1989년 8월 3일, 극단 ‘연극사회’와 ‘춘천앙상블’은 춘천이라는 좁은 지역에서 다수 극단이 분산 운영되는 비효율성을 극복하고 양질의 공연 제작을 위해 통합을 결의하였고, 극단 ‘태백무대’(대표: 홍기동)를 창단하였다.

6. 1990년대 활발한 춘천 연극

1990년대는 춘천 연극의 전성기로, 극단‘혼성’, 극단 ‘굴레’, 극단 ‘태백무대’ 는 거의 경쟁적으로 연간 3편 이상의 작품을 제작하고, 각자의 소극장에서 활발한 공연을 이어갔다. 이 시기는 극단들이 저마다의 정체성과 연극 스타일을 확립하고자 노력한 시기로 평가된다.

1990년 춘천에서는 제8회 전국연극제(1990. 5. 21.~6. 4.)가 개최되었으며, 극단 굴레는 김상열 작, 이영철 연출의 《철수야》로 단체 장려상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 극단 태백무대 주최로 제1회 서로소극장 페스티벌이 열렸는데, 강원고등학교 극회 '파란자전거', 강원대학교 극회 '영그리', 춘천기계공고 극회 '로고스' 등이 참가하여 학교극의 활성화에도 기여하였다.

1993년 4월 10일 춘천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하면서 외형적 환경의 변화가 있었고, 개관 기념 공연으로 춘천의 세 극단이 연합하여 셰익스피어 작, 이영철 연출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공연하였다. 이는 한동안 각자의 소극장에서 활동하던 극단들 간에 다시 교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7월에는 춘천국제연극제(조직위원장: 박완서)가 개최되어 세계 연극인들과의 교류가 시작되었으며, 춘천 연극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연극을 통한 이해와 협동 그리고 교육”을 주제로 7월 23일부터 30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을 공연장으로 하고 강원공무원연수원을 숙소로 하여 진행되었으며, 호주, 일본, 아일랜드, 중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러시아, 조지아(구 그루지아), 뉴질랜드, 핀란드, 스페인, 인도, 한국 등 총 15개국 15개 단체가 참가하여, 공연의 질적 수준 또한 높아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1994년 한국연극협회 춘천시 지부 인준
1994년은 한국연극협회 춘천시지부가 인준된 해이자, 극단 혼성 30주년, 극단 굴레 20주년, 극단 연극사회 10주년이 되는 해로 의미가 깊었다. 같은 해 4월 10일 춘천문화예술회관이 개관하면서 외형적 환경의 변화가 있었고, 개관 기념 공연으로 춘천의 세 극단이 연합하여 셰익스피어 작, 이영철 연출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공연하였다. 이는 한동안 각자의 소극장에서 활동하던 극단들 간에 다시 교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 극단 혼성은 김상열 작, 김원림 연출의 《배비장전》의 춘천 공연을 시작으로 아일랜드 던다크 국제연극제에 참가하고, 영국 런던에서는 교민을 위한 공연을 펼치며 국제 교류를 이어갔다. 한편 극단 굴레는 김유정 원작, 이영철 연출의 《봄봄》과 윤조병 작, 김예숙 연출의 《참새와 기관차》를 공연하였는데, 《참새와 기관차》는 춘천 최초의 여성 연출작으로도 평가된다. 태백무대는 홍기동 연출로《칠산리》와《언챙이 곡마단》을 공연하였으며, 이 중《칠산리》는 강원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태백무대는 1994년《칠산리》공연 이후 극단 ‘연극사회’라는 명칭으로 다시 변경하여 활동을 이어 나갔다.

1995년 한국연극협회 춘천시지부 정식 출범
1995년 7월에는 한국연극협회 춘천시지부가 정식 출범하였고, 초대 지부장에 김원림, 부지부장에 김유진과 김창기가 선출되었다.

1996년 춘천시 수부도시 100주년 기념으로 일본 도야마 국제연극제에 오태석 작, 김경태 연출의 《태》를 출품하였으며, 춘천 내 극단 ‘혼성’, ‘연극사회’ 극단 ‘굴레’ 세 극단의 단원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또한 10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춘천문화예술회관과 춘천시민회관에서 1996 춘천국제연극제가 개최되어, 중국, 라트비아, 프랑스 등 16개국이 참가하였다. 각국의 공연 외에도 친교 행사, 한국 문화 체험, 연극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지역 연극인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같은 해, 극단 굴레는 이영철, 황운기, 이상수 등의 노력으로 옥천동에 《꿈의 소극장》을 개관하여 연극, 아동극, 인형극 등을 공연하였다.

1997년은 극단 간 교류가 활발해진 시기로, 타 극단 배우의 객원 출연이 늘고, 젊은 연극인 세대의 실험과 프로극단화를 지향하기 시작한 전환점이 되었다. 극단 연극사회는 장진 작, 조민철 연출의 《허탕》, 막스 프리쉬 작, 유정현 연출의 《방화범》, 이상우 작, 황운기 연출의 《늙은 도둑 이야기》 등을 공연하였다. 극단 굴레는 파울 마아르 작, 송창언 연출의 《비밀모자》, 이근삼 작, 이영철 연출의 《꿈 먹고 물 마시고》를, 극단 혼성은 공지영 작, 김경태 연출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청소년 연극으로 청소년이 배우가 되어 무대에 직접 오르는 작품을 공동 창작, 엄일호 연출의 《사분의 삼》을 공연하였다.

1997년 3월, 굴레 이영철 대표는 인형극단 ‘꿈동이’를 창단하였다. 황운기, 신동애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인형극 전문교육을 받고 창단 공연으로 《귀염둥이 포니》를 무대에 올렸다.

1997년 한국연극협회 춘천지부 제2대 지부장으로 오일주가 선출되었으며, 부지부장에는 김경태, 황운기, 지근환이 선출되었다. 1998년에는 연합공연으로 김원림 연출의 《맹진사댁 경사》를 무대에 올렸는데, 초창기 선배부터 신입단원까지 함께 출연한 뜻깊은 무대였다.

1999년 극단 연극사회는 서로소극장에서 엄윤채 연출의 《빌라도의 고백》, 엄인희 작, 엄윤채 연출의 《작은 할머니》 등을 소극장 장기 공연 형식으로 무대에 올리며 연극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그러나 1999년, 극단 굴레의 《꿈의 소극장》은 건물주의 용도 변경으로 인해 개관 3년 만에 폐관되었고, 2000년에는 연극사회가 운영하던 《서로 소극장》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약 10년 만에 폐관되었다.

7. 2000년대 춘천 연극의 전환기

1999년 4월, 강원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기본 계획이 수립되었고, 그해 문화예술진흥조례를 개정한 뒤 발기인 총회 등을 거쳐 12월 28일 법인 등기가 완료되었다. 강원문화재단은 강원도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지방 문화예술의 진흥을 통해 도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국제 문화교류를 통해 국가 간 상호 이해와 협력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출범하였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의 창작과 보급,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지도 및 지원, 재능 있는 예술인 발굴과 육성 등의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이러한 지원 사업은 IMF 경제 위기로 침체된 지역 연극계에 ‘희망’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연극을 제작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기존 극단의 활동은 물론 새로운 극단이 창단되는 등 지역 연극계의 질적·양적 팽창을 유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IMF 이후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젊은 연극인의 유입이 점점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순수한 열정만으로 기존 단원들을 극단에 붙잡아 두는 데 한계가 있었고, 연극인에게도 최소한의 출연료를 제공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연기자들은 이제 출연료 협상을 위해 자리에 앉기도 하였으며, 재정이 열악한 극단은 배우를 구하지 못해 공연작품을 변경하거나 타 극단에서 배우를 수혈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현실이 교차하는 가운데, 춘천 연극은 작은 변화들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춘천 지역 연극계 전반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으며, 공연 환경의 기반과 창작 인력의 세대 교체가 동시에 요구되는 시점이었다.

춘천 최초의 연극단체인 극단 ‘혼성’은 오랜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으나, 초기 활동 멤버이자 주요 단원이었던 김경태가 극단 ‘아트3 씨어터’를 창단하며 탈퇴하게 되었다. 이후 극단 ‘혼성’내에는 새로운 연극인의 유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공연예술 현장이 점차 전문화되어 가는 흐름 속에서 극단의 구성원 고령화 문제가 맞물리며 공연 활동은 점차 축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2001년 1월, 극단 ‘혼성’의 소극장은 《귀여운 장난》 앵콜 공연을 끝으로 건물주의 용도 변경에 따라 13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폐관되었다. 또한 1999년 석사동에 다시 개관하였던 극단 연극사회의 ‘서로 소극장’도 2001년 겨울,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한편, 극단 ‘굴레’는 대표작 《방황하는 별들 2000》을 제작하여 청소년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을 시도하였으나, 예년만큼의 반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춘천 지역 연극계가 전반적으로 침체기에 접어든 시기였다. 예년만큼 활발한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굴레소극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공연 기반이 급격히 위축되었다.그러나 위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문 연극단체의 등장과 새로운 활력 (2000~2002)
2000년에는 새로운 극단들이 창단되었다. 6월, 춘천여성문화예술단(대표: 장정임)이 창단되었고, 11월 1일에는 극단 도모(대표: 황운기)와 인형극단 몽이(대표: 황운기)가 출범하였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극단 아트3 씨어터(대표: 김경태)가 창단되어 전업 연극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춘천여성문화예술단(이 단체는 2010년 ‘춘천여성문화예술단 마실’로 명칭을 변경함)은 젊은 시절 각각의 극단에서 활동하다 결혼과 육아로 무대를 떠났던 여성 연극인들이 다시 모여 예술을 통한 사회봉사를 실천하고자 창단하였다.

소외계층 초청 공연, 고3 수험생을 위한 힐링 공연, 사랑의 집, 국군 춘천병원, 춘천 중앙경로대학 방문 공연 등 연간 1~2편의 공연을 꾸준히 올리면서 역량을 성장시켜나가게 된다.

기존 극단들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였다. 극단 연극사회는 장진 작, 엄윤채 연출의 《아름다운 사인》을, 극단 굴레는 박선영 연출의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를 공연하였다. 극단 도모와 몽이도 창단과 함께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창단초기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극단 굴레의 사무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거나, 극단 굴레의 활동에 보조 인력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극단 아트3 씨어터는 연극적 정체성을 명확히 하며 창작 공연 정은경 구성, 연출의 《흔적……의 과거》를 발표하였고, 춘천문화예술회관 개관기념 공연초청되어 정은경 구성, 연출의《멍》을 무대에 올렸다. 해당 작품은 2001년 스위스 로잔 국제연극제에 초청되어 공연되기도 하며 단체의 활발한 시작을 알렸다. 뒤이어 2002년 스위스 로잔 국제연극제에 공식 초청되어 정은경 작·연출의 《생–Life》를 공연하였으며, 이후 이외수의 소설을 극화한 《꿈꾸는 식물》(정은경 작, 김경태 연출)을 한림대학교 일송아트홀에서 공연을 하고, 공연 이후 이외수 작가와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였으며, 전석 매진을 기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이 시기에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건물 중 하나인 춘천중앙감리교회(현 춘천중앙교회)는 1972년에 건축되었고, 2000년 춘천시가 교회 본관 및 부속동을 매입하면서 ‘춘천예술마당’으로 명명되었다. 이 공간은 2001년 10월 6일 공식 개관하여 시민들이 자주 찾는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2001년, 극단 도모는 옥천동 춘천예술마당으로 사무실을 이전하고 ‘봄내극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창작극 《Esse》를 공연하였다. 이와 함께 청소년 대상 연극 워크숍 및 단원 역량 강화 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하였다.

춘천여성문화예술단은 장진 작, 엄윤채 연출의 《아름다운 사인》을 공연하며 본격적인 무대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3년~2005년 새로운 활동 양상
2003년, 극단 ‘연극사회’는 1년간의 공백을 깨고 장소현 작, 양흥주 연출의 《김치국씨 환장하다》와 이만희 작, 엄윤채 연출의 《용띠 개띠》를 무대에 올리며 활동을 재개하였다.

극단 ‘아트3 씨어터’는 국립극장 ‘컬처로드(Culture Road)’에 공식 초청되어 《Life》를 공연하였고, 영국 사우스웨일스 극장 투어, 워크숍, 브라이튼 프린지 페스티벌 및 서울 변방연극제(Marginal Theatre) 초청 공연 등으로 해외 관객은 물론 중앙무대의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정은경을 주축으로, 이지선 등이 활약하며 젊은 연극인의 유입과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그러나, 이 시기 춘천 연극계의 가장 큰 변화는 인적 자원의 위기였다. 초년 배우의 부족, 신입 단원 확보의 어려움, 관객의 눈높이 상승, 작품 수준 향상에 대한 부담 등으로 인해, 타 극단의 배우를 캐스팅하고 출연료를 지급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는 1980~1990년대 연극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극단에 모여 공연을 만들던 풍경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극단 ‘아트3 씨어터’와 극단‘도모’는 꾸준히 공연을 올리며 지역 연극계의 명맥을 유지해 나갔다.

2005년, 극단 ‘아트3 씨어터’ 는 이오네스코 작, 김경태 연출의 《대머리 여가수》를 공연하였고, 캐나다 몽로리에 국제연극제(Mont-Laurier Festival) 초청공연, 정은경의 해외교류 기획으로 체코 브르노 실험극장(Center Experiment Theatre)의 초청을 받아 정은경 구성·연출의 《The Dark》를 무대에 올렸다.

극단 ‘도모’는 봄내극장 운영과 함께 기술팀을 직영으로 운영하며, 각 분야의 스태프 구성과 함께 춘천국제연극제, 마임축제, 춘천 고 음악제 등 축제행사에 기획팀으로 참여하면서 전문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활발한 해외 활동과 2007년 소극장 ZONE 개관 (2006~2007)
2006년에는 극단 ‘도모’가 장태준 작·연출의 《POF》로 폴란드 오폴레 국제연극제에 초청되었고, 황운기 작·연출의 《악몽》은 일본 연극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공연되었다. 극단 ‘아트3 씨어터’는 정은경의 기획으로 체코 G-스튜디오(G-Studio)의 초청을 받아 《의자들》을 공연하였고, 체코 쿠울레 극장(Koule Theatre)과의 합동 창작공연으로 《Variety》를 선보였다.

이 밖에도 극단 굴레는 김태린 작, 이상수 연출의 《미라클》을 공연하였고, 춘천여성문화예술단은 엄인회 작, 박명환 연출의 《작은 할머니》를, 연극사회는 장진 작 《서툰 사람들》을 무대에 올리며 각 극단이 고유의 색과 방향성을 갖고 활동을 이어갔다.

2007년 5월 18일, 극단 ‘아트3 씨어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생활친화형 문화공간 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후평동 90-1번지에 ‘소극장 ZONE’을 개관하였다. 이는 정은경의 소극장 공간 운영 의지를 바탕으로 정은경의 여동생 정은영이 건물을 신축하면서 건물 3층에 소극장의 조명 설치가 가능한 층고를 확보한 건물을 신축함으로써 이루어진 결과였다. 마침, 극단 ‘아트3 씨어터’의 상임연출인 김정훈이 생활친화형 문화공간 조성사업의 지원 신청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지원금 결정이 되면서 극단 ‘아트3 씨어터’의 소극장 기반이 마련되었다.

‘소극장 ZONE’ 개관 공연은 고재귀 작, 김정훈 연출의 《아카시아 꽃》이었으며, 이후 《의자들》, 《안해》, 《도를 아십니까?》 등 다양한 장기공연이 이어졌다. 정은경, 김정훈, 이지선, 김동민, 최종섭 등 젊은 연극인들이 중심이 되어 소극장 활성화를 견인하였다.

한편, 2007년에는 강원고등학교 극회 ‘파란 자전거’ 출신으로 1990년 극단 ‘해동머리’를 창단하여 극단을 이끌어오던 박광덕의 별세로 인해 극단 ‘해동머리’의 활동은 중단되었고, 그의 연극에 대한 열정은 일부 연극인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되었다.

2008년 김유정 연극제
춘천 출신의 대표적인 문인 김유정의 문학은 2000년대 들어 지역 연극과 활발히 접목되며, 춘천 연극의 주요한 창작 자원으로 부상하였다. 특히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된 연극화 작업은 지역 문학의 문화자산화 및 무대예술 콘텐츠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08년에는 김유정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김유정 연극제 기념사업추진위원회’와 춘천 MBC의 공동 주최로 김유정 연극제가 개최되었다. 본 연극제는 춘천이 낳은 문인의 문학과 지역 연극을 접목하는 시도로, 지역의 문화자산을 재조명하고 연극을 통한 문학적 상상력의 확장을 실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가 극단으로는 ‘극단 아트3 씨어터’의 《안해》, ‘극단 굴레’의 《봄봄》, ‘극단 도모’의 《소낙비》, ‘극단 연극사회’의 《금 따는 콩밭》, ‘극단 혼성’의 《동백꽃》 등이 있으며, 각 작품은 김유정 문학을 바탕으로 한 연극적 해석을 통해 지역 연극과 문학의 융합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김유정 문학은 무대 예술을 통해 새로운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2010년에도 이어졌다. 극단 ‘연극사회’는 창단 26주년을 맞아 2008년 《금 따는 콩밭》 공연을 계기로 김유정 문학을 본격적으로 연극화하는 『김유정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본 프로젝트를 통해 《총각과 맹꽁이》, 《솥》, 《산골》 등의 작품이 봄내극장에서 연이어 공연되었으며, 원작에 담긴 한국어의 전통미와 강원도적인 향토성을 살리면서도 연극적 재미와 해학을 고루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에는 김유정의 대표작을 바탕으로 한 음악극 공연도 이루어졌다. 춘천시문화재단(이사장: 최지순)은 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을 원작으로 한 음악극 《봄봄》을 제작하였으며, 춘천 축제극장몸짓에서 공연되었다. 본 음악극은 극단 ‘목화’의 연출가 오태석이 총연출을 맡았으며, 전통 사위와 장단을 바탕으로 원작의 에피소드를 재구성한 신명나는 무대로 완성되었다. 출연진은 주로 극단 목화의 배우들로 구성되었으며, 일부 춘천 지역 예술인들이 참여하여 완성되었다.

그러나 춘천 출신 작가의 문학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 정작 지역 연극인의 참여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은 연극계 일각에서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김유정의 문학은 지역의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연극화 과정에서 춘천 연극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주체적인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던 지역 연극인들의 바람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작품 제작과 공연이 일회성에 머물고 지역 연극계에 축적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본 사업은 지역성과의 실질적인 연계성에 아쉬움을 남겼다.

2010년대 도약과 정체
2010년대 초반은 극단 ‘도모’와 극단 ‘아트3 씨어터’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시기로, 창작극 제작, 소극장 운영, 사회적기업으로의 전환 등 춘천 연극계에 새로운 동력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2009년부터 극단 ‘도모’는 황운기 연출의 《29일째》, 원유선 각색·연출의 《동백꽃》, 황운기 각색·연출의 《노란 손수건》(원작: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등 다양한 창작극을 연이어 제작하며 레퍼토리를 확장해 나갔다. 당시 극단은 배우 약 10명, 기획 및 스태프 약 15명 등 총 상근 인원이 약 30명에 이르렀으며, 매년 3편 이상의 창작 및 재공연을 지속하며 공연 제작 역량을 강화해 나갔다.

같은 해 극단 ‘도모’는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었고, 2010년에는 정식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아 강원도 최초의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기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를 계기로 경영 시스템의 혁신과 운영 안정화를 이룩하였으며, 공연예술을 통해 지역사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체계적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2014년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주최 ‘예술경영사례 발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이는 체계적인 근무 환경 조성과 복지 운영의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로, 이후 인건비 지원을 통해 조직 내 역할 분담이 구체화되고 극단 ‘도모’의 2세대 활동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극단 ‘아트3 씨어터’는 2009년 소극장 개관 3주년을 기념하여 <웃자 웃자 시리즈> 제3탄 《차력사와 아코디언》(장우재 작, 김정훈 연출)을 5월 19일부터 7월 15일까지 장기 공연하였다.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도 장기 공연을 통해 배우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소극장 운영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소극장에서의 장기공연으로 배우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같은 해 강원도교육청의 후원으로 뮤지컬 《편의점에 오세요》(차근호 작, 김정훈 연출, 김동욱 음악감독)를 기획·제작하였으며, 이는 수능시험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과 공연을 결합한 인문학프로그램으로 각 학교는 공연이 되는 극장으로 찾아와 단체로 관람을 하였다. 이 공연은 극단의 사회적 역할 확대의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2010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간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소극장 ZONE’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적 창작 공연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대표작 《IN THE BOX》(정은경 연출, 노영아·김경태 출연)는 박스 형태의 다양한 공간 구조를 활용해 다층적인 무대 구성과 전환을 통해 관객에게 신선한 예술적 체험을 제공하였다. 또한 ‘매개공간 프로젝트 – 또 다른 저어기: 소통+네트워킹’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예술가들과의 교류와 예술 다양성에 대한 담론 확장도 적극적으로 시도되었다.

같은 해, 쟝 주네 원작, 정은경 재구성·연출의 《하녀들》은 세계국립극장 60주년 기념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과 ‘2010 서울연극올림픽’에 국내 우수작으로 초청되어 공연되었으며, 김유정 소설을 각색한 연극 《안해》(김정훈 작·연출)는 서울 대학로 소극장 축제 ‘D.FESTA’에 초청되어 공연함으로써 좋은 작품은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어느 곳에서든 공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소극장 ZONE’ 에서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Platform 90-1’운영하며 국제 예술 교류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헝가리의 Kompania Studio와 협력하여 헝가리 연출가 라슬로와 김정훈 연출이 공동으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재구성하고 공동연출을 하였다. 짧은 시간동안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부담으로 밤을 새서 작품에 대한 토론을 하고 다음날 아침 배우들과 열정적으로 연습을 하였다. 이 작품은 약 열흘간의 레지던시와 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한국의 대표 전통음악 집단 ‘김주홍과 노름마치’가 음악을 맡아 연극과 음악, 그리고 국경을 넘는 예술 협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으며, 실험적 도전을 통한 예술 역량의 확장과 상호 자극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2010년, ‘춘천여성문화예술단’은 극단명을 ‘춘천여성문화예술단 <마실>’로 변경하였다. ‘마실’은 단순한 외출을 넘어 연극을 통해 이웃과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한때 무대를 떠났던 여성들이 다시 예술 현장으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후 극단은 《통닭: 그녀들의 이야기》(제천 나이스코리아 여성연극제 출품), 《배꼽》(2011년 강원연극제 동상 수상), 《위기의 여자》(창단 10주년 기념 공연) 등 여성의 사회적 자립과 독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공연하였다. 또한 《그녀들만의 공소시효》, 《산국》, 《사랑에 관한 소묘》, 《오징어 덮밥》 등 다양한 작품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단체의 예술적 역량과 배우들의 무대 경험을 확장해 나갔다.

반면, 극단 ‘연극사회’는 2011년을 전후하여 활동에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단원들이 외부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점차 분산되었고, 퇴계동 지하 연습실 역시 운영비 부담으로 인해 폐쇄되었다. 연습 공간의 부재와 대표의 부재는 단원 간 결속력 약화로 이어졌고, 일부 단원은 프리랜서를 선언하며 소속 없이 외부 활동을 이어갔다. 극단에 일부 인원이 남아 있었으나, 조직적으로 활동을 지속하기에는 어려움이 커졌으며, 결국 극단 ‘연극사회’는 자연스럽게 휴지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8. 2010년대 중·후반 외연 확장과 내부 정체

2015년부터 극단 ‘도모’는 시민연극교실 ‘나도 배우다’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극 교육 프로그램 ‘꼬마 도모’를 운영하며, 공연 제작 활동과 더불어 교육사업과 관객 개발을 병행하기 시작하였다.

‘꼬마 도모’ 프로그램은 일정 기간 운영된 후 지속적인 운영이 어려워 중단되었지만, 시민을 대상으로 한 ‘나도 배우다’ 프로그램은 연극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일반 시민들의 잠재된 예술적 욕구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시민들에게 배우 로 무대에 서는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연극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였고, 관극층을 확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극단 ‘도모’는 공연 제작 편수 증가와 공연일수 확대, 공연 외 문화사업의 병행 등 활발한 외부 활동을 전개하였다. 공연장 상주단체 지원사업, ‘대한민국 소극장 열전’ 참여, 해외 공연 등 다방면에서 극단의 운영 외연이 확장되었지만, 다양한 사업이 중첩되며 조직 내 부담이 가중되었고, 그에 따른 리스크도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레퍼토리 운영 역시 어려움을 겪었다. 외형적으로는 활발한 공연 활동을 이어갔지만, 내부적으로는 극단의 지속 가능성과 창작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깊어졌고, 조직은 점차 정체와 재정비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2015년은 극단 도모에게 외적 성장의 피로와 내부 균형의 한계를 동시에 체감하게 한 시기로, 본격적인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극단 ‘아트3 씨어터’ 역시 비슷한 시기 내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2000년 창단부터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배우 이지선과 김동민은 공연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거나 외부 활동을 하게되었고, 극단의 창단 멤버이자 중추적 역할을 해온 정은경과 김정훈 역시 대표 김경태와의 운영 문제를 둘러싼 잦은 충돌로 인해, 2012년 극단을 떠나게 된다.

특히, 창단 이후 약 12년간 극단의 활동을 이끌어오며 신체언어를 중심으로 한 창작극을 제작하고, 해외 공연을 추진하는 등 극장 운영과 극단 정체성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해온 정은경의 탈퇴는 극단 아트3 씨어터의 방향성에 큰 전환점을 남겼다. 이후 극단은 김경태 대표 단독 체제로 운영되었으며, 이로 인해 신체언어 중심의 공연 및 해외교류 활동은 점차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2011년 창작집단 쵸크 24, 2014년 극단 무소의 뿔, 2019년 극단 이륙 창단
2011년, 장태준 연출은 창작집단 ‘쵸크24’를 창단하였다. ‘Choc.’은 초콜릿(Chocolate)의 줄임말이며, 여기에 숫자 ‘24’를 더해 ‘24가지 맛이 담긴 초콜릿 상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매년 다른 색깔과 맛의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창작 의지를 반영한 이름이다. 같은 해 창단 공연인 《The Knock》을 시작으로, 2014년에는 장태준이 직접 희곡을 쓰고 연출한 《6월 26일》을 초연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한편, ‘극단 아트3 씨어터’에서 탈퇴한 정은경은 김정훈과 함께 2014년 ‘연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여 ‘극단 무소의 뿔’을 창단하였다. 창단작으로는 루퍼트브룩 원작을 재구성한 《리투아니아 in mirage》를 상상마당 춘천에서 공연하였다. 이 작품은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무대 형식을 통해 공연의 끝을 명확히 알 수 없게 구성하여, 관객들이 공연 종료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게 했다. 이후 한 동안 시간이 흘러가면서 관객들은 하나 둘 극장 밖 로비로 나오게 되었고, 로비에서 배우들과 만나며 비로소 커텐 콜 박수를 받는 연극적 실험을 이어갔다.

2019년에는 ‘극단 이륙’이 창단되었다. ‘이륙’이라는 이름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예술이 더 멀리, 더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는 희망이 담겨 있다. 본래 청소년극 중심의 ‘청소년극단 무하’의 성인극 창작 부문이었던 ‘아트무하 씨어터’는 2018년 12월, 청소년극단 무하와의 조직적 연결을 종료하고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2019년 2월, 극단 ‘이륙’(대표: 안준형)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본격적인 독립 창작단체로서 활동을 개시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극단 ‘도모’의 창작 거점이자 20여 년간 활동의 중심이었던 춘천예술마당 내 ‘봄내극장’과 ‘도모소극장’(구 마임의 집)이 2019년 안전 문제로 인해 임시 폐쇄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봄내극장은 공연장으로, 도모소극장은 연습실 겸 교육공간으로 활용되며 극단 도모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간 폐쇄는 극단의 방향성에 중대한 전환점을 안겨주었다. 극단은 정든 공간을 떠나야 했으며, 새로운 창작 거점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2020년, 극단 도모는 춘천시 신동면 증리, 김유정 문학촌 인근의 폐막걸리 공장 건물을 새 공간으로 이전하고, 이곳을 ‘아트팩토리 봄’이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아트팩토리 봄은 공연, 창작, 교육, 카페 기능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극단 도모는 이 공간을 중심으로 자립형 극장 운영을 본격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2020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은 공연예술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춘천의 극단들 또한 대부분의 공연이 중단되었다. 특히, 극단 무소의 뿔은 2020년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벌 어셈블리 씨어터 초청으로 《하녀들》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에딘버러 페스티벌 축제가 70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 취소되면서 공연 역시 무산되었다. 대부분의 극단은 영상 촬영 송출 방식으로 대체하는 등 대면 예술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팬데믹은 연극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커다란 전환의 계기를 가져온 시기였다.

2022년, 코로나가 종료 국면에 접어들면서 극단 ‘도모’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중장기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김유정 관련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창작극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또한, ‘아트팩토리 봄’을 중심으로 완전한 자립형 창작 구조를 정착시켜 나가고 있다.

2023년, ‘극단 무소의 뿔’ 대표이자 연출가인 정은경은 대표작 《The Maids》로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다시 초청이 되어 참가하였다. 이 공연은 영국 어셈블리 씨어터와 한국 AtoBIZ가 공동 주최한 ‘Korean Season’ 초청작으로, 에든버러 Assembly Theatre Studio Two에서 2023년 8월 2일부터 27일까지 장기 공연되었으며, Asian Arts Awards에서 ‘최우수 공연상(Best Performance)’을 수상하였다. 이는 춘천 연극의 세계화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지역 예술의 작품성과 확장 가능성을 국제 무대에서 확인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한편, 2024년에는 극단 ‘굴레’가 창단 50주년을 맞아 《어항》을 공연하면서 오랜 침묵을 깨고 작품 활동을 재개하였다. 50년의 역사를 맞고 있는 극단 ‘굴레’ 는 공연을 통해 다시금 활발한 창작 활동을 예고하였다.

* 위의 글에서 언급한 극단 ‘굴레’는 1974년 창단되었으며, 2002년 ‘굴레 씨어터’로 개칭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창단 당시 명칭에 따라 극단 ’굴레’로 표기하였음을 밝힙니다.

9. 2020년대 춘천 연극계의 변화

2020년대에 접어들며 춘천 연극계는 극단 운영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내부 연출가의 창작 방향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연출가와 배우, 무대 스태프 간의 역할 또한 점차 분명하게 구분되면서, 전문 예술 단체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연출가, 배우, 기술 스태프 각 분야의 전문적 역량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공연의 완성도와 예술적 깊이를 더욱 높이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춘천 연극계는 여전히 몇 가지 구조적인 과제에 직면해 있다. 열악한 배우 수급 여건은 창작의 연속성과 작품 완성도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선배 극단의 노령화로 인해 지속적인 공연 활동이 단절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젊은 극단과 기성 극단 간의 유기적인 소통과 협력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세대 간 단절 역시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천 연극은 지나온 60년의 시간 속에서 축적된 경험과 내공을 바탕으로, 향후 100년을 준비하는 ‘식지 않는 화산’과도 같은 응근한 에너지로 움직이고 있다. 비록 겉으로는 조용히 흐르는 듯 보이지만, 춘천 연극은 여전히 끓어오르며, 새로운 창작과 실험을 향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